[헤럴드생생뉴스]“이 땅에서 제2의 6·25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을 남북이 뼈아프게 깨우쳐야 합니다.”

남북 화해에 앞장서온 한국의 대표 시인 고은(80)이 이탈리아에서 남북 화해를 역설했다.

고 시인은 10일 오전(현지시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 대학에서 열린 ‘명예 교수(Fellow)’ 수여식 직후 기자와 만나 최근 고조되고 있는 남북한 간의 긴장 국면을 염려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카포스카리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아시아학부에서 한국 현대시 등에 대해 강의하고, 이탈리아 독자를 상대로 시 낭송회를 여는 등 이탈리아를 무대로 활동 중이다.

고 시인은 “어쩌자고 극단적 대결로 치닫는지 모르겠다”며 “대화로 이뤄가는 문명이 무기의 위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남북이 함께 인식하고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자작시를 낭송해 남북한 관계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 그는 현재는 남북 문인들이 공동 집필 중인 ‘겨레말 사전’에 깊숙이 관여하는 등 남북 문화 교류의 전면에 서 왔다.

그는 “무기나 핵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힘으로 강대국으로 진입하는 게 역사의 올바른 진행 방향”이라며 “서로를 겨누고 있는 총구에서 총알이 아니라 (화해의)시가 나오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남북 위기 상황이 고조되는 것과 맞물려 시인에 대한 이탈리아 언론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는 2005년 시집 ‘순간의 꽃’, 2011년 시선집 ‘노래섬’이 번역, 출간된 이후 이탈리아 문단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려왔다.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일 마니페스토’는 지난 4일 ‘한국시에 매혹된 이탈리아’라는 제목으로 신문 한 개 면을 통째로 할애, 고은 시인의 시 세계를조명하고 남북 대치 상황에 대한 그의 견해를 실었다. 지난 8일에는 국영 방송인 ‘라이(RAI)’ 라디오가 시와 남북한 긴장을 주제로 그의 육성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산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기면 베네치아가 곧 침몰이라도 할 것처럼 생각하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여기 사람들도 최근 남북 상황이 곧 전쟁으로 이어질 것처럼 우려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카포스카리 대학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 펠로우’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베네치아는 그 옛날 지중해를 넘어 오리엔트까지 호령하던 마르코폴로의 도시”라며 “이곳의 대학에서 아시아인 처음으로 펠로우를 수여받는 ‘알뜰한 영예’를 누리게 됐다”며 미소지었다.

지난 1월 ‘바람의 사상’, ‘두 세기의 달빛’ 등 자전 산문집 두 권을 동시에 내놓는 등 여든의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은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 있든 힘들지 않다”며 “아직 써야 할 것, 읽어야 할 것이 많고 만나야 할 독자도 많아 즐겁다”고 해맑게 웃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단초를 마련한 단테, ‘태양의 도시’를 남긴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가 캄파넬라를 젊은 시절부터 흠모했다”는 그는 “내 안에 이미 이탈리아 시 세계가 잠재해 있었다”며 조만간 이탈리아에서의 체류·여행 경험을 담은 시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