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기자]“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지만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문학치료학을 잘 정리해 사람들이 활용하기 쉽게 할 생각이예요.”
세계 최초로 문학치료학에 관한 이론을 개발한 정운채(58) 건국대 국문과 교수. 그는 지난 1995년 문학치료학을 고안한 이후 18년간 관련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문학치료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서사(敍事ㆍepic)’ 구조를 파악해, 다른 서사와 보충ㆍ강화ㆍ통합하는 방식으로 마음 속 병을 치료하는 학문이다. 서사란 여러 텍스트 조각을 연결시켜 전후 맥락을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한 남성을 사모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그 남성에게 다가갔지만 거부당했고 상사병으로 숨져 뱀이 됐습니다. 이 뱀은 그 남성이 자는동안 다가가 그를 물어죽였죠. 이것이 ‘상사뱀 설화’이고, 이 상사뱀 서사를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사람은 이성에 대한 분노ㆍ적대감ㆍ피해의식을 느끼게 되죠.”
정 교수는 10여년의 연구를 통해 상사뱀 서사가 내재된 사람은 ‘역적 누명과 회초리’ 서사를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한 처녀가 사모하는 총각의 집을 찾았다가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고 쫓겨났죠. 그후 이 처녀는 다른 남성과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았고, 아들 셋은 모두 과거 급제했어요. 하지만 처녀를 쫓아낸 총각은 훗날 역적으로 몰리게 됐고, 회초리를 맞은 여성이 아들 셋을 통해 그를 구하게 됩니다. 상사뱀 서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역적 누명과 회초리’ 서사를 내면화하는 치료과정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법을 고치게 되는 것이죠.”
문학치료학을 처음 선보였던 1999년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이론화되지 않았던 문학치료학이 다소 황당해보였다는 것. 정교수는 그러나 이후 14년간 연구원 10여명과 문학치료학 이론확립, 서사진단 프로그램ㆍ서사지도ㆍ서사사전 개발 등의 과정을 거쳐 세계 최초로 문학치료학을 이론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문학치료학은 각종 연구재단 등재지로 인정받을 만큼 공인됐고, 서울 은평구의 시립병원과 경기도 요양원 등지에서 알코올중독자, 암환자들의 치료에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2011년 11월 정 교수에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대장암 4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절망하지는 않았다. 항암치료 중에도 끊임없이 문학치료학을 연구해 학술집을 여러권 내고, 지금도 학부와 대학원에서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에 발진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요. 의학적 소견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죠. 하지만 환자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진짜 환자가 되기 때문에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가도 중요한 문제에요. 문학치료학이 잘 죽는 것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