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사법계를 끌고 가는 양두 마차다. 때문에 두 기관의 수장은 국가 최고위급 인사로 예우받는다.

대법원은 재판의 최종심을 판단하는 기관이자, 산하에 사법행정을 관장하는 법원행정처를 둔 사법부 최고기관이다. 양승태(65ㆍ사법연수원 2기)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선 대법관과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법관이면서, 동시에 사법부 전체를 책임지는 대표 역을 맡고 있다. 대법원장은 의전상 대통령과 국회의장에 이어 서열 3위의 자리다.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 위헌법률, 헌법소원, 탄핵, 위헌정당 해산 등을 심판하는 기관이다. 사법부에 속하지 않은 독립기관으로, 사법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대법원과는 수평적, 병렬적 관계를 맺고 있다. 박한철(60ㆍ사법연수원 13기) 헌법재판소장은 재판관의 일인이자, 헌법재판소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수장이다. 헌법재판소장은 대법원장에 이어 의전 서열 4위를 차지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한 사람의 운명이 갈리고, 국민 전체가 울고, 웃을 수 있다. 거대한 법인체가 뿌리째 흔들리기도, 소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판결 권한은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가 뒷받침 되지 않는 한 나올 수 없는 무신불립의 권한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사회갈등의 조정, 사회통합 등을 사명으로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법기관의 판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법기관이 역할을 잘 못한 때문만은 아니다. 이해관계가 다양해지고, 권위주의 정권시절 해묵은 ‘원죄’가 어우러진 결과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법의 날을 맞아 기념사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이 다시는 상용되지 않아야 한다”며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공정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민 다수가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이 사회에서 통용된다고 믿고 있다. 부러진 화살, 도가니, 재벌그룹 오너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전관예우, 판사의 막말 논란, 검사의 참고인 집무실 내 성추행…. 모두 ‘약자에 평등하지 않은 법집행과 판결’이 속설이 아닌 사실임을 보여주는 말들이다.

앞서 양 대법원장 역시 2011년 취임 초기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신뢰 확보를 강조하고 다양한 개혁 방안을 내놓으며 부단히 노력해 왔다. 전관예우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법원장으로 근무한 다음 상급법원장으로 승진하지 않고, 고법에서 법관으로 계속 근무하는 평생법관제를 도입했다.

전형적인 보수 성향에 안정과 화합을 중시하는 인물로 분류되는 양 대법원장은 국민의 목소리와 사회적 요구에 귀기울이고 대응하면서 개혁적인 모습도 보여줬다. 사법연수생 외 변호사와 검사, 교수, 공무원 중 10년 이상 법조경력자를 신규 법관으로 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평결 존중의 원칙을 법률에 명시해 배심원 평결에 ‘사실상의 기속력’을 부여하도록 관련법률 개정도 연내 추진할 예정이다. 형사사건에 한해 이뤄지던 것을 민사사건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양 대법원장은 긍정적인 입장이다. 재판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대법원장에 집중된 사법행정권한을 각급 법원장에게 분산하도록 한 것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지난 달 취임 일성으로 “국가와 사회를 통합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힌 박 헌재소장은 ‘조화와 통합’을 제 5기 헌재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다. 헌법재판관 시절 개인의 기본권을 최우선시 하는 판결로 주목 받아온 것과 다르지 않은 행보다.

박 헌재소장은 취임사 등에서 “이해가 대립중인 노동 교육 연금 등 복지 분야, 환경 분야에서 헌법재판소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조정하는 데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해 사회 갈등의 조정자, 중재자로서 충실히 역할하겠다”고 다짐했다.

양 대법원장과 박 헌재소장이 당면한 과제는 우선 양 기관의 권한을 놓고 벌어지는 혼선과 갈등적 양상을 해소하는 것이다.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발전적 충돌로 치부하기엔 대법원과 헌재의 판결이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과 파장이 막대하다.

우선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의 입장이 정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정위헌 결정은 법률의 효력은 그대로 인정한 채 해당 법률 규정을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하는 결정 주문을 뜻한다. 그간 여러 차례 있었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해 대법원은 “헌법상 대원칙인 사법권의 본질과 권력분립 원리에 반하며 법적 근거가 없는 결정 형식”이라며 “법원이나 국가기관을 기속하지 못하고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사유도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지난 3월 헌재가 긴급조치 1,2,9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뒤, 4월 대법원이 긴급조치 1호에 이어 9호에 대해 위헌 선언을 한 것도 양 기관간 혼선을 보여주는 사례다. 같은 사안에 대해 두 개의 기관에서 각각 결정하는 ‘이중 결정’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긴급조치를 법률이 아닌 명령으로 보고 대법원에 심사권이 있다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헌재는 긴급조치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지니므로 법률로 봐야 한다며 심사 대상으로 삼아 위헌 결정했다. 위헌 여부에 대해 동일한 판단이 나왔을지언정 긴급조치 관련 피해자들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좌시할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법조계와 법률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권한 다툼을 자제하고 상호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최후의 보루가 두 사법기관이다.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되찾기 위한 두 기관 수장이 펼치는 한수 한수에 천근만근 무게감이 실린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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