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 감추어진 승부 (40)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여권에 <호색한>이란 도장이 찍힌 채로… 신희영의 지급보증을 통해 공안에게서 풀려난 강준호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강유리마저 비행기를 타고 란저우로 훌쩍 떠나버린 뒤라서 허전함이 더욱 크게 밀려오던 중이었다. HY 훌푸드 직원들과 N-Dos 단의 졸병이 함께 남아있었지만… 그들은 있으나 마나 허당들이었다.

“신희영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우린 어차피 쪽박 찬 신세예요. 그래도 어쩝니까? 집구석으로 돌아갈 수밖에요.”

“그래야지 뭐. N-Dos단 저 친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밀리터리 룩으로 CF를 찍어도 말짱 꽝이었잖아요? 이젠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지. 난 귀국해서 신 회장께 싹싹 비는 수밖에 없어요.”

3류 감독과 HY 훌푸드 직원들, 소위 유호성 케어 팀원들은 주섬주섬 트렁크에 짐을 싸며 이렇게 투덜댔다. 하지만 그럴수록 강준호는 더욱 부아가 치밀 따름이었다. 누군 집에 갈 줄 몰라서 어영부영 하는 줄 아나?

“이걸 보라고. 떡볶이 국물 발라놓은 것처럼 시뻘건 글씨로 ‘호색한’이 찍혀있는데 무슨 낯으로 귀국을 해? 박박 찢어버릴 수도 없고, 침 발라 지워버릴 수도 없고… 환장하겠군. 이 꼴로 입국심사대를 어떻게 통과하란 말이야?”

강준호가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HY 훌푸드 직원들은 쌌던 짐을 다시 주섬주섬 풀어내며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지. 안 그래요?”

강준호가 여권을 방바닥으로 집어던지며 말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HY 훌푸드 직원들은 좌단이냐, 우단이냐를 가리지 못한 채 가자미처럼 서로서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나마 판단이 빠른 사람은 역시 감독이었다. 아무리 3류 감독일지언정 현상을 꿰뚫어 보는 눈이 밝았다고나 할까?

“그럽시다. 어차피 죽을 목숨. 일찍 귀국해봐야 일찍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차라리 골프 종주국인 중국에 왔으니 실컷 골프나 치다 가자고요.”

골프 종주국이 중국이라고? 이게 무슨…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그것도 아주 근거 없이 허무맹랑하게 지껄이는 말은 아닌 듯했다.

누구나 골프가 스코틀랜드의 목동들이 나뭇가지로 돌멩이를 쳐 날리던 놀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 명나라 시대의 그림인 ‘사녀도’를 보면 고개를 한번쯤은 갸웃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녀도’에는 명대의 선종(宣宗) 왕이 일종의 궁중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을 보면 선종의 곁에는 캐디들도 따라다녔고, 작은 홀마다 깃대와 같은 폴이 하나씩 꽂혀 있기도 하다.

“중국이 골프 종주국이라고요? 정말?”

강준호가 갑자기 만면에 희색을 띄며 물었다. 어차피 골프의 ‘골’자만 들어도 입이 함박 벌어지던 그였다.

“그럼요. 스코틀랜드에서 고증된 골프기록보다 무려 500 여년이나 앞선 기록이 중국에 있다니까요? 그 경기가 ‘추이환’에요. ‘부다추’라고… 걸어 다니면서 공을 치던 놀이가 발전된 것인데, 나무 공을 ‘권’이라 했고요… 에, 또 뭐냐? 작대기를 ‘구봉’이라고 했습니다.”

“진짜로요?”

“정말입니다. 드라이버 샷을 머리 두 자 써서 ‘두봉(頭棒)’이라고 했고요. 세컨 샷을 ‘2봉’이라고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황제는 물론 금으로 만든 드라이버를 썼습니다. 내가 이걸 영화로 만들려고 얼마나 공부한 줄 아세요?”

“감독님도 아는 게 많아서 배고프겠습니다, 그려. 하여간 알았고요… 말 나온 김에 잔소리 그만하시고 골프나 칩시다. 중국에 기막힌 골프장이 워낙 많지 않습니까?”

강준호는 여권을 발로 짓이기고 있었는데… 그 꼴을 보니 아예 귀국하길 포기한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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