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함께 모여사는 공간이 신분 과시 ‘욕망의 바벨탑’ 변질

아파트 비극史 그린 ‘숨바꼭질’ 실종된 형 아파트에 새긴 표식 동생 집에도 발견되며 괴한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집’의 역사였다. 일제시대엔 전통 한옥이 대거 일본식 가옥으로 개축됐고, 해방 후엔 ‘적산가옥’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에게 불하됐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낡은 적산가옥은 우리 현대사의 한 구비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지붕을 개량하고 초가집을 없애자는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은 한국의 근대화를 상징했다. 그 사이 한국 전쟁을 겪은 많은 이들은 ‘집 한 칸’을 갖는 것이 꿈이 됐다. 근대화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도시로 이주한 이들에겐 더욱 큰 열망이었다. 나날이 변모해가는 도시 속 한 귀퉁이에라도 몸 누일 곳을 마련하고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은 대한민국 서민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목표가 됐다.

그리고 아파트의 시대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집의 역사는 1932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서울 충정로의 5층짜리 아파트가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것임을 일러준다. 이후 해방 후 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종암동과 마포에 근대식 아파트가 세워졌고, 1970년엔 지금의 동부이촌동에 한강맨션 아파트가 중산층용으로 지어지면서 대한민국 집의 역사는 아파트의 역사가 된다.

이후 서울의 땅은 속속 아파트 단지로 구획돼 갔고, 1980년대 후반엔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에 대규모 단지가 형성됐다.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차 있게 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아파트는 도시인들의 ‘평균적 삶’을 뜻했으나, 2000년대에 출현한 초고층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는 주거 지역과 아파트 평수, 그리고 건설사 브랜드가 ‘신분’을 드러내는 ‘아파트 공화국’의 개막을 알렸다. 재개발, 뉴타운이라는 이름의 아파트 건립 계획이 선거를 좌우하고, 아파트 단지에 따라 지지정당이 달라지며, 아파트 분양 정책이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초고층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신분 상승을 의미하는 ‘욕망의 바벨탑’이 됐다.

영화 ‘숨바꼭질’(감독 허정, 14일 개봉)의 주인공 성수(손현주 분)도 성공한 사업가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부인, 어린 딸과 함께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뿐인 형의 존재를 꼭꼭 숨기고 외면하고 살아 왔던 그는 어느 날,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찾아나선다. 형이 살던 곳은 항구 부근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빈민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던 낡은 아파트. 철거와 재개발 풍문으로 뒤숭숭한 흉가 같은 아파트에서 형의 자취를 쫓던 성수는 집집마다 현관 앞에 새겨진 이상한 암호를 발견한다. 그 집 주거자의 수와 성별을 기록한 표식이었다. 형을 알고 있다며 경계와 두려움에 휩싸인 이웃 주민 주희(문정희 분)를 만난 후 성수의 혼란과 불안은 커져만 간다. 괴이한 암호와 이웃 주민의 증언, 형이 살던 낡은 아파트 속 허물어진 벽에 감춰진 비밀 통로는 유령 같은 불길한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과연 형일까? 그 사이 성수의 고급 아파트 단지 각 집 현관에서도 표식이 발견되고, 단지 내에 검은 헬멧과 두툼한 외투로 위장한 괴한이 목격된다. 드디어 성수의 집과 가족마저 괴한에 의해 공격을 당한다.

‘숨바꼭질’에서 숨바꼭질을 벌이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반칙으로 얻은 부와 그것을 반칙으로 뺏고자 하는 탐욕이다. 여기서 ‘집’은 부와 탐욕, 그 자체다. 집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주거의 수단이 아니라 최후의 목적이다.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기 위해서 살아야 했던 대한민국의 집, 대한민국 아파트의 비극적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스릴러영화가 바로 ‘숨바꼭질’이다.

집은 과연 우리에게 도대체 뭘까? ‘건축학개론’에서처럼 추억으로 쌓은 낭만적 공간일까? 김기덕 감독의 ‘빈집’에서처럼 존재를 잃은 도시 유랑민의, 유령 같은 사랑이 기거하는 곳일까? ‘고령화 가족’에서처럼 한심한 가족들의 욕망이 서로를 할퀴고 또 보듬으며 삼겹살이나 나누는 거실일까? ‘우아한 세계’ 속에서 가족을 멀리 떠나 보내고 홀로 라면이나 들이키며 외로움을 달래는 기러기 아빠의 집일까? 영화 속의 수많은 집, 당신의 주소는 어디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