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차명계좌 거래 금지 적극검토하고 있는데…

대국민 경고 효과 있지만 불법근절·처벌강화 효과 없어 되레 선의의 피해자 발생 우려도

최근 차명거래에 대한 논란으로 금융실명법 개정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금융당국은 실명법 개정이 사실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명법 개정이 차명거래에 대한 대국민 ‘경고’ 효과는 있지만, 불법 차명 거래를 근절하거나 처벌 규정이 강화되는 등의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국회에서 논의되는 실명법 개정안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등 종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국회는 최근 차명계좌가 전두환 전 대통령 및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의 비자금 관리 창구로 활용됐다는 점을 감안,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실명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금융위는 차명거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탈세나 범죄에 악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실명법 개정으로 불법적인 거래에 대한 단속이 강화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 중이다. 특히 불법 차명거래는 실명법 하나로만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행정ㆍ형사 법률이 유기적으로 연계해 규제하는 만큼 법 체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 측 입장이다.

실제로 불법 거래는 지난 1993년 제정된 실명법을 기본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금융정보분석원(FIU)법 등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즉 실명법에 따라 금융회사가 실제 당사자 여부 및 거래목적을 확인해 의심 거래를 국세청이나 검찰청 등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이들이 불법 여부를 가려 관련 법으로 처벌을 하는 식이다. 즉 실명제는 실명거래를 위해 금융회사들에 확인 의무를 부여한 것이지, 불법 거래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따라서 실명법으로 차명거래를 금지한다고 해도 금융회사 입장에선 고객에게 묻는 것 외에 차명거래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차피 차명거래 여부는 수사기관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실명법이 개정된다 해도 불법 차명거래를 원천차단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실제로 실명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전체 금융거래 중 차명거래 규모는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고객들 역시 법 개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보유한 계좌가 차명계좌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법 조항을 모르다 보니 차명거래 여부를 분간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신이 언제든지 불법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금융고객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생활비 목적으로 남편 급여 통장을 관리하거나 자녀의 금융교육을 위해 적금통장을 개설하는 등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차명거래를 할 수 없게 돼 불편이 가중되기도 한다. 영업 관행상 기업자금을 자금부장 명의로 관리한다던가 법인 설립 전에 공동설립자금 관리를 발기인 대표자 명의로 관리하는 것도 차명거래의 일종이라 법이 개정되면 중단해야 한다. 이밖에 고아ㆍ심신상실자의 금융자산을 보호자나 위탁시설 대표 등의 명의로 관리하는 것 등도 불가능해져 법 개정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이병래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금융실명법 개정은 실명법 뿐 아니라 거래 처벌규정이 있는 FIU법, 범죄수사법, 세법 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검토한 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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