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버벌코미디 퍼포디언그룹 옹알스에든버러 프린지 TOP 12 이어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서도 1위공연에 태권도·사물놀이 등 결합K-코미디 전도사로 맹활약

논버벌코미디 퍼포디언그룹 옹알스 에든버러 프린지 TOP 12 이어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서도 1위

공연에 태권도·사물놀이 등 결합 K-코미디 전도사로 맹활약

‘든든한 울타리’를 떠나 K-코미디 불모지인 영국으로 향했다. 누구의 지원도 없었다. 도리어 비아냥 섞인 반응이 컸다.

“한국에서나 잘 하지 왜 거기까지 가냐?”, “돈은 많이 버니?”

덕분에 독기를 품던 날도 있었다.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며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비용을 모았다. 한 달 간의 여정에 쓸 체재비도 함께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넌버벌 코미디를 하는 ‘옹알스’. 이들은 스스로를 ‘퍼포디언(퍼포먼스+코미디언) 그룹’이라 부른다. ‘개그콘서트(KBS2, 조수원 조준우 채경선)’와 ‘웃찾사(SBS, 최기섭)’ 공채 출신 개그맨이 만난 옹알스는 결국 일을 냈다. 세계 3대 코미디 페스티벌 중 하나인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가한 2700여개의 팀 가운데 상위 12개 안에 드는 성과를 냈다. 명실상부 코미디 한류 1세대였다. 국내에서도 뒤늦게 그들의 진가를 알아챈다. 선배 개그맨 김준호는 옹알스를 “존경하는 후배”라고 치켜세우고, 최근 진행됐던 제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선 쟁쟁한 방송사의 스타 개그맨들을 제치고 1등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수원(개그맨/퍼포디언팩토리공동대표),채경선(개그맨/퍼포디언팩토리대표이사),최기섭(개그맨/퍼포디언팩토리),조준우(개그맨)
덕분에 독기를 품던 날도 있었다.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며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비용을 모았다. 한 달 간의 여정에 쓸 체재비도 함께다.
조수원(개그맨/퍼포디언팩토리공동대표),채경선(개그맨/퍼포디언팩토리대표이사),최기섭(개그맨/퍼포디언팩토리),조준우(개그맨) 덕분에 독기를 품던 날도 있었다.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며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비용을 모았다. 한 달 간의 여정에 쓸 체재비도 함께다.

“2008년에 ‘개그콘서트’ 동료들과 장애인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어요. 말로 웃기는 코미디가 각광받던 시기였습니다. 봉사활동에선 중증 장애로 몸이 안 좋은 분들이 많았는데, 어떤 개그맨이 공연을 해도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저희가 올라가 저글링을 하고, 풍선을 불어주고, 그림자 쇼를 하니 그제서야 웃음이 터지더라고요.(조준우)” 옹알스가 해외로 눈을 돌린 계기였다. “언어의 장벽이 있던 장애우 공연에서 반응을 체감한 뒤, 아예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옹알이, ‘생후 6개월에서 12개월쯤 된 아기들이 내는 말소리’. 외국에서는 ‘배블링 코미디(Babbling comedy)’로 불린다. 무대에서 옹알스는 말이 없다. 다만 아기들의 눈에 들어온 갖가지 장난감을 재해석하며 저글링, 마임, 그림자극, 비트박스를 보여준다. “코미디언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에 관객들은 웃음과 울음을 뒤섞어 화답하곤 한다.

당연히 난관도 있었다. 한국인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코미디 공연을 했던 선례도 없었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방법에 대한 막막함도 컸다. 무작정 떠난 사전답사에서 해외 공연을 숱하게 보고 돌아온 뒤, 2010년 마침내 에든버러로의 상륙. ‘맨땅에 헤딩’이었다. 홍보 전단지를 만드는 일부터 옹알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막무가내”, “동대문식 홍보”였다고 네 남자는 입을 모은다. 대형 기획사를 등에 업은 국내 서포터즈도, 현지의 외국인들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에든버러로의 ‘올인’이었다. “한국에도 코미디가 있냐?”는 질문을 받던 옹알스는 이윽고 영국 주요 언론을 도배하고, 페스티벌이 진행된 한 달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이젠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해외 공연 행사에선 초청 0순위로 자리했다.

“문화의 장벽은 분명 존재하더라고요. 에든버러의 첫회와 마지막회 공연은 무척 달라요. 외국인의 웃음코드에 맞지 않는 아이템을 다 뺀 뒤 다듬어지고, 완성된 것이 지금의 공연입니다.(채경선)”

갓난아기들의 장난감 상자에 들어있던 무수한 아이템 가운데엔 요요도 있고, 지구본도 있었다. 최기섭의 주특기인 ‘지하철 소리’도 공연의 한 테마였지만, 문화의 차이와 소리 인식의 벽에 부딪혀 과감히 수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 두바이에선 당연히 ‘19금(禁) 코미디’도 금물이다. 벽은 존재했지만, 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옹알스는 ‘그들만의 공연’으로 장벽을 뛰어넘었다. 자신들의 60분에 폭소하는 외국인을 보니 그들은 “한국밥도 맛있지만, 외국밥을 먹어보니 더 맛있더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한다. 사실 가장 벅찬 감격은 자부심이었다.

“한류로 해외에 진출하는 분들은 대한민국의 톱스타였잖아요. 우리는 역으로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없는 코미디언들이 진출해 인정받게 됐어요. 에든버러 어느 곳을 가도 알아보고, 어딜 가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요. 참 이상하죠? 한국에서는 몰라 보는데 외국에서는 알아보니. 우리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아닐까요.(최기섭)”

“한국문화로 어느 나라의 한 부분을 침투하고, ‘넌버벌 코미디’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는 데서 ‘코미디로 하나가 됐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럴수록 애국자가 되기 시작했어요.(조수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앞에서 옹알스는 어느 순간 티셔츠에 태극기를 새겨넣었고, 광복절을 맞아 ‘독도 퍼포먼스’까지 벌였다.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고 ‘K-코미디’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붙울수록 옹알스의 고민도 깊어졌다. 저글링ㆍ비트박스 등 외국의 전유물을 공연하면서 한국적인 기술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고민이었다. 옹알스는 이제 태권도와 하회탈ㆍ사물놀이를 결합한 공연으로 발전시켜 후배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9월엔 쉴 틈이 없다. 이미 캐나다 밴쿠버, 중국 상하이, 광저우의 초청 공연이 예정돼 있고, 내년 1월엔 BBC 계열 방송사의 섭외로 다시 영국을 찾을 예정이다. “지금은 먹고 살 만 하다”지만 옹알스 멤버들은 여전히 영국행 경비 마련을 위한 비자금 조성에도 한창이다.

“우리의 꿈이요? 돈을 많이 번다거나 알아주길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닙니다. 한국과는 다른 코미디를 가지고 진출한 해외에서 ‘한국의 코미디’로 인정받은 걸로 자부심을 느껴요. 언젠간 코미디를 상업예술이라 말하는 국내에서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고 싶어요. 우리의 마지막은 라스베이거스입니다.(옹알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