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소매물도 본섬에서 등대섬 가는 바닷길 하루 두번 갈라지며 그 모습 드러내 들이치는 파도에 족히 허리까지 닿는 짠물 나무계단 올라 등대에 다다르니 푸른 비경이 발 아래 펼쳐지고… 돌아가는 길은 더 흠뻑 젖고 싶다
#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 (정지용 기행문 ‘통영5’ 中)
“왜 오노. 일로 오지 말고 퍼뜩 가레이. 아직 물길 열렸다.”
지난 27일 오전 8시30분. 경상남도 통영 소매물도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바로 앞에 해삼, 멍게 등을 파는 좌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바다 위 절경 감상도 잠시,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여객선 온돌바닥을 지루하게 굴러다니던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먹는 것에 가장 먼저 눈이 갔던 터였다.
손님이 왔는데 반기기는커녕 할머니들이 손을 휘휘 저으며 호통을 쳤다. 소매물도의 ‘앙꼬’라고 할 수 있는 등대섬으로 가는 길이 아직 열렸으니 서둘러 가보라는 뜻에서였다. 한 과자 TV 광고로 유명해진 일명 ‘쿠크다스섬’ 말이다.
아직 물길이 열렸다고? 사전에 알아보기로는 이날 물길이 열리는 시간은 오전 5시였다. 해서 등대섬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본섬만 여유있게 둘러보려는 계획이었는데 이거 잘하면 등대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단 생각에 야무지게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 파란색으로 쓰인 ‘바다백리길’ 표시가 소매물도 등대길의 시작을 알렸다. 등대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달 완공한 6개 트레킹 코스 중 마지막 구간이다. 한산도, 비진도, 대매물도, 연대도, 미륵도 등 5개 구간까지 모두 이으면 42.1㎞로 100리(39.3㎞) 안팎이라 해서 바다백리길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트레킹을 위해 새로 길을 조성한 것이 아니다. 원래 섬 주민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지겟길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용하던 길을 탐방객들이 가기 쉽게 정비하거나 표지판만 만들어놓아 더 정감이 가는 곳들이다.
소매물도 본섬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하루에 두 차례만 바다가 갈라지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물때는 매일 다르다. 당초 예보와 다르게 아직 바닷길이 열렸다 하니 쾌재를 부르며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를 어쩌나. 갈길은 바빠 죽겠는데 자꾸만 바다가 뒤에서 배낭을 붙들고 늘어진다. 가파른 섬길은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숨겨진 비경을 펼쳐놨다. 오륙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가익도를 비롯해 청록색의 잔잔한 바다에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는 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도나도 가는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것이 시인 정지용마저 묘사를 포기하게 만든 절경이지 싶었다.
망태봉까지 숨넘어가게 가파른 길을 지나 등대섬으로 이어진 바닷길 앞에 다다르니 이미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깊이야 종아리 정도인데 들이치는 파도를 보니 족히 허리까지는 짠물에 담글 각오를 해야 건널 상황이었다. 어쩌지 싶은 고민도 잠시. 언제 다시올 수 있으랴 하는 마음에 바지를 걷어올리기 시작한 서너 명 아저씨 무리에 섞여 70m가량의 몽돌길을 건넜다.
나무데크로 잘 정비된 계단을 갈지(之)자로 따라 오르면 등대길의 종착점인 새하얀 등대가 우뚝 서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모를 푸른 비경이 발 아래로 펼쳐져 있다. 옷을 열 번은 더 적셔야 한다고 해도 꼭 가봐야 할 광경이다. 물론 다시 본섬으로 나올 때는 물이 더 들어차 흠뻑 젖었지만.
소매물도가 가없이 펼쳐지는 비경을 자랑한다면 배로 10분여 거리에 있는 대매물도의 해품길은 길 자체의 매력으로 승부한다.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서는 야생화로 덮여있고, 이어 윤기가 반질반질한 동백터널이 나온다. 아직 식당 하나, 매점 하나 없다. 그만큼 원시림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 걷는 재미로만 보면 대매물도가 으뜸이다.
대매물도로 오는 배는 대항마을 선착장에서 내리지만 통영으로 나가는 배는 당금마을 선착장에서 타야 한다. 이에 맞게 코스를 짠다면 훨씬 알차게 돌아볼 수 있다.
통영=안상미 기자/hug@heraldcorp.com
교통편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은 첫 번째 코스인 미륵도 달아길을 빼놓고는 모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미리 배편이나 시간을 잘 알아보지 않고 길에 나선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한산도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 만큼 배편이 자주 있어 편하다. 통영여객선터미널(055-645-3717)에서 오전 7시에서 오후 6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예매와 항로, 시간, 요금 등은 한국해운조합 홈페이지(www.seomticket.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진도는 통영에서 40분 정도 걸리며, 보통 매물도로 들어가는 배가 비진도를 경유한다. 따라서 소매물도나 대매물도와 연계해서 일정을 짜는 것이 유리하다. 성수기에는 배편이 늘어나지만 평소 하루 세 번 들어간다.
연대도는 통영여객선터미널이 아니라 달아 선착장에서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씩 섬나들이호가 출발한다. 토요일과 공휴일은 수시 운항하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결항할 수 있으므로 확인이 필요하다.
소매물도와 대매물도는 통영여객터미널에서 하루 세 번 출항하는 여객선이 차례로 거쳐 통영으로 돌아간다. 소요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거제 저구항(055-633-0051)에서도 배편이 있다.
소매물도 본섬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열목개가 열리는 시간은 국립해양조사원 인터넷 홈페이지(www.kho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영~소매물도 여객선을 운항하는 한솔해운 홈페이지(www.hshaewoon.co.kr)에서도 물때와 여객선 운항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먹을 곳·잘 곳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의 첫 번째 코스인 미륵도 달아길은 통역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먹고 자는 데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날 섬으로 떠날 계획이라면 통영연안여객선터미널 근처에 머무는 것이 편하며, 10여분 거리에 금호충무마리나리조트(055-643-8000)가 있다. 클럽ES리조트(055-644-4600)는 달아길의 마지막 종착점인 달아전망대에서 가깝다.
먹거리로는 충무김밥과 멍게비빔밥, 복국집이 도처에 있다. 여객선터미널 근처에는 대부분에 새벽에 문을 열어 섬으로 이동하기 전에 배를 든든히 채울 수가 있다.
다른 5개 구간은 제대로 먹고 자기 위해선 예약 등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아직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많이 들어서지 않았다. 식당이 없는 곳은 민박집에 미리 식사를 예약하면 된다.
2구간 한산도에는 문어포마을 1곳, 하소리(진두마을) 쪽에 2곳 등 펜션이 있고, 진두, 추봉도마을을 중심으로 민박도 이용할 수 있다.
3구간 비진도는 모래톱길 너머 외항마을에 콘도형 펜션과 민박 등이 있으며, 보통 식사를 제공한다. 비진도는 해풍으로 키운 무공해 시금치와 땅두릅이 특산물이다.
4구간 연대도는 특히 예약에 신경을 써야 한다. 여느 관광지처럼 따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없고, 소일 삼아 객을 맞이하는 마을 주민이 전부다. 펜션이나 민박은 연대도 홈페이지(www.yeondaedo.com)에 들어가면 각각의 숙소 사진과 가격, 연락처가 자세히 나와 있다. 방문 전 어촌계장님께 예약하면 식사를 할 수 있다.
5구간 매물도는 당금마을과 대항마을에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이 20여 곳 있다. 매물도 홈페이지(www.maemuldo.co.kr)에 들어가면 자세한 소개가 나와 있다.
6구간 소매물도는 등대식당이라고 단체손님도 수용 가능한 식당이 있다. 선착장 바로 앞으로는 각종 해산물을 파는 가게도 여럿이다. 일찍부터 쿠크다스섬으로 유명세를 탄 덕에 펜션도 여유가 있다.
jym64@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