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기업은 생산성 · 인건비 걱정, 근로자는 임금감소 걱정…짧은 근로시간에도 경쟁력 갖춘 선진국 ‘여가=노동의 연장’ 인식 확산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최근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2016년부터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키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면서 혼란은 시작됐다. 노동시간 축소로 정부는 일자리 증가를 예상하는 반면, 기업은 노동생산성 저하와 인건비 증가를 걱정하고, 근로자는 임금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노는 시간과 물려 있는 근로시간 관련 이슈는 항상 논쟁이 돼왔다. 2004년 주5일근무제를 시행할 때도 기업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결정하는 데만 3년 이상 걸렸고, 작업장 규모에 따라 점차적으로 단계별로 시행했다. 그나마 주5일근무제는 노사정 합의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이번에는 각계의 합의에 도달하는 시행 결정과정 없이 여당이 바로 법제화에 나서 혼란이 더해졌다.

우리는 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할까? 또 얼마만큼 줄여야 효율적일까?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노동시간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음에도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노동시간이 길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우리보다 못사는 터키, 그리스도 노동시간이 우리보다 짧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장시간 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왔기 때문이다. 장시간 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생산성 높게, 경쟁력 있게, 창의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주5일근무제 시행 전 한국 기업들은 근무 중에도 커피타임, 담소, 사적인 전화시간을 가졌고, 심지어 사우나까지도 가는 느슨한 근무환경이었다. 이렇게 일해서는 밤늦게 퇴근해봐야 연장근무 효과가 별로 없다. 당시‘9시 출근, 5시 퇴근’을 시행하던 외국계 기업들은 근무시간 중 사적인 전화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빠듯하게 일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유지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만달러에 이르는 북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은 대체적으로 짧다. 지구상에서 잘사는 나라들은 노동시간이 짧고, 장시간 일하는 나라는 못살고 빈부격차가 크다. 그러니까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는 데에는 대다수가 동의하지만 어떻게 줄일 것인가는 각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사회적으로 동의가 잘 안 된다. 이 동의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여가일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시정돼야 한다. 여가가 ‘복불복’이다. 그것은 태양력에 맞지 않는 태음력 명절 휴가 때문이다. 공휴일이 평일에 많이 잡혀 있는 해와 그렇지 않은 해의 노는 일수가 차이가 많다. 운이 좋으면 연간 118일 놀고, 운이 나쁘면 113일 논다. 노는 날이 최대 9일이나 차이가 난다. 서양은 법정공휴일이 몇 월 몇 번째 무슨 요일이라는 식으로 날짜를 고정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공휴일수의 변화가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은 한 나라의 부를 생산하고 배분하는 경제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시간총량을 정하지 않는 나라다. 따라서 여가시간총량제 도입으로 향후 5년 정도는 휴일 수를 미리 계산해 예측 가능한 휴가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노사 간 잠재적 갈등요인을 제거하고 노동자의 여가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최석호 레저경영연구소장은 말한다. 이렇게 해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5일근무제니, 대체휴일제니,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개정이니 하며 겪는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일은 여가시간총량제 도입 이후에 논의해야 한다. 여가시간총량제 시행으로 예측 가능해진 노동시간이 길다고 느껴지면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영국은 법정근로시간이 우리보다 크게 짧지는 않지만, 우리보다 훨씬 많이 논다. 세세한 내용은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고 작업장에 자율권을 줬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노는 것에 관한 한 자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기본적인 규정은 필요하다. 아직도 연월차휴가와 여름휴가가 100% 시행되지 못해 휴가를 길게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징검다리 연휴는 완전히 놀아버리고 대체노동을 하는 융통성도 발휘할 만하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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