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경주)=서병기 선임기자]최근 국내에서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수상한 가정부’ 등이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도 한국 드라마인 ‘마왕’과 ‘미남이시네요’가 리메이크됐다. ‘꽃보다 남자’는 일본 원작을 한국이 리메이크했는데, 베트남에서는 일본판보다 한국판인 ‘꽃보다 남자’가 훨씬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수상한 가정부’의 최지우가 일본 드라마 ‘가정부 미타’의 여자 주인공과 똑같은 의상을 입고 나오자 차라리 원작을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과 함께 ‘일본 콘텐츠의 잇따른 리메이크가 창작의 빈곤을 의미한다’는 부정적 해석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리 간단하게 볼 문제는 아니다.

이런 차에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사장 이팔성) 주최로 지난 16~19일 경주시 신평동 소재 힐튼경주호텔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드라마 콘퍼런스’에서는 ‘국내에 리메이크 작품 성공 사례 및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관점이 발표돼 리메이크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리메이크 드라마는 양면성이 있다. 잘 만들면 원작을 뛰어넘는 창의성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복제에 불과해 창작 의도를 꺾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중국의 왕립성 작가처럼 리메이크 드라마는 만들지 말하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일본 원작자인 다쓰이 유카리(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로부터 “리메이크이지만, 또 다른 창작”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노희경은 “원작의 리메이크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면서 “원작 프리미엄만 가지고 가서는 안 되고, 재창조 단계로 가는 세공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작가는 남자 주인공의 직장이 호스트바라 한국 정서상 공감을 이뤄내기 어려워 갬블러로 바꿨고, 여자 주인공도 원작에서는 순박한 여성이지만 똑똑한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드라마를 현실로 보고, 일본은 드라마를 드라마로 본다. 그래서 한국적 재해석이 필요했다. 원작이 연기였다면 우리는 디테일로 승부를 걸었다. 송혜교가 시각장애인단체의 도움을 받아 식사와 옷 입는 모습, 걷는 모습을 익혀 잘 표현할 수 있었고 원작 배경은 중소도시였지만 대도시로 바꿔 (조인성이 송혜교에게 친오빠라고) 속이는 방법을 더욱 과학적이고 디테일하게 만들었다.”

노 작가는 “리메이크도 기획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본에서 원석을 사와 세공해 다른 나라에 되파는 브리지 역할을 하는 단계다. 70억~80억원을 투자해 드라마를 만드는데 내수용만으로는 힘들다”면서 “세공력은 아직 뒤져 있지만 열정을 갖추고 있는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에 언젠가 세공 기술을 빼앗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상품으로만이 아닌, 그 나라의 문화적 정서와 정신적 가치를 대변하기에 원석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새로운 가치 기준을 갖고 각색이라는 세공을 해낼 때 진정한 드라마의 문화적 교류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그 겨울~’의 원작자 다쓰이 유카리는 “주인공의 직업이 바뀌는 건 드라마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라면서 “노 작가 드라마를 몇 편 봤더니 아름다운 대사를 쓰시는 분이라고 느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써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른 작품이 탄생했고, 멋진 드라마,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됐다. 리메이크이지만 삶과 죽음의 철학이 돋보이는 또 다른 창착으로 완전히 ‘노희경 월드’가 됐다”고 전했다.

조인성(좌부터/영화배우/탤런트),송혜교(탤런트/영화배우)
최근 국내에서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수상한 가정부’ 등이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조인성(좌부터/영화배우/탤런트),송혜교(탤런트/영화배우) 최근 국내에서는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직장의 신’ ‘여왕의 교실’ ‘수상한 가정부’ 등이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일본의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직장의 신’도 그런대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유상원 KBS미디어 프로듀서는 리메이크 선정 기준을 발표했다. 원래 기획하려는 관심사였던 마이너리티 문제에 ‘파견의 품격’만이 가진 독특함을 접목시켜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 프로듀서는 “원작은 사회적 ‘을(乙)’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프레임이 있었고, 슬픈 현실이지만 코믹한 웃음 코드가 있었다”면서 “원작의 틀을 깨지 않아야 하고, 비정규직 시청자에게 자괴감을 느끼지 않도록 할 것, 2013년 대한민국 현실 이야기가 될 수 있게 철저하게 현지화해야 한다”고 기획 시 유의점을 설명했다.

그는 “원작의 좋은 구도는 가져오고 ‘미스킴은 히어로’라는 캐릭터의 특성을 강화했다. 다만 40분ㆍ10부작을 70분ㆍ16부작으로 만들면서 더 많은 에피소드가 필요해 윤난중 작가는 고민했지만, 인물 각자의 스토리가 부여돼 조연들도 행복해했다”고 전했다. 유 프로듀서는 리메이크 선택의 기준으로 “드라마 고유의 재미가 있어야 하고 보편성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원작틀은 유지하지만 현지화가 가미돼야 한다. 그리고 콘텐츠 사업성, 판권 가격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혜수(영화배우)
김혜수(영화배우)

‘중국 드라마 각색과 창작’을 발표한 쟈이샤오러 작가는 “한국의 ‘아내의 유혹’이 중국에서 리메이크됐는데, 논쟁도 많았다”면서 “중국의 젊은 시청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욕도 했다”고 전했다. ‘아내의 유혹’이 방송된 후난TV 관계자도 “시청률이 좋았지만 악평도 많았다. ‘이런 드라마를 들여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도 일어났다”면서 “줄거리와 인물관계가 바람직하지 못하고, 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시청자들이 이를 선호한다면 작가들이 당혹감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필리핀에서 온 알바 렛진 프로듀서는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인처럼 격정적인 걸 좋아한다. ‘아내의 유혹’이 남편이 동성애로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원전에 없는 부분이 추가돼 필리핀에서 방송됐다”면서 “한국 드라마는 사랑, 가족, 희망을 담고 있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콘퍼런스는 한 사회의 모순과 상황을 다른 사회, 다른 나라도 느낀다는 점에서 아시아로 묶을 수 있다면서 리메이크도 일종의 문화 교류일 수 있고 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국가 간 공동 제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간 단계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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