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통상환경, 위기인가 기회인가

美·日 등 12개국 참가…中견제 목적 변형된 FTA 명목GDP 합계 전세계 40% 달하는 거대블록 한국 “다른나라 개방수준 보고 득실검토후 확정” 어정쩡한 입장에 자칫 소외 우려 목소리도

연내 공식 출범을 앞두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무역협정이라기보다는 글로벌 패권다툼의 전략적 도구 성격이 짙다. 사실상 미국과 일본이 세계경제의 최강자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동시킨 변형된 자유무역협정(FTA)이 TPP이기 때문이다. 2005년 첫 논의가 시작될 때 TPP는 4개국(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의 조그만 무역협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이 참가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 여기에 올해 3월 일본이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우리나라의 고민도 시작됐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12개국이 참가하는 TPP는 모든 분야의 관세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지역과 경제 동맹을 강화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하고, 일본은 이에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연내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TPP 가입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TPP 참여…경제적 효과는?=현재까지 TPP 참가 의사를 밝힌 국가는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페루, 칠레,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총 12개국이다. 참여국의 인구는 7억8000만명, 명목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세계의 40%를 차지하고, 무역규모는 10조2000억달러(27.8%)에 달하는 거대 블록이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면 우리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일본,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과 한꺼번에 FTA를 체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수출시장이 확대되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이 TPP에 가입했을 때 10년 동안 실질 GDP가 2.5~2.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관세철폐 효과로 우리 수출이 자동차, 석유정제품, 섬유 순으로 증가할 것이며 불참할 경우 0.1~0.19%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익이 거의 없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FTA 체결국가 5개 중 일본과의 교역은 오히려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져 마이너스가 예상되고, 나머지 4개 국가와 교역규모가 크지 않아 전체적인 GDP 증가효과는 0.1~0.2%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잡한 무역방정식, 쉽지 않은 셈법=한ㆍ미 FTA, 한ㆍEU FTA 등 양자 협상에 익숙했던 한국은 이제 미국,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다자 협상인 TPP 참가까지 고려하며 새로운 국면에 놓여 있다. 한ㆍ중 FTA를 추진하는 와중에 TPP에 참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한국은 복잡한 무역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입장이 됐다.

TPP에 참여할 경우 국내 농수산 분야의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TPP에 포함돼 있는 칠레, 베트남, 호주 등에서 저렴한 농수산물이 유입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추가적인 농업 시장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ㆍ미 FTA 당시 논란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TPP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ISD는 FTA 체결국가가 협정상의 의무나 투자 계약을 어겨 투자자가 손해를 봤을 때 해당 정부를 상대로 제3자의 민간기구에 국제 중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해외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걸면 걸리는 식’으로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빗발치면서 한ㆍ미 FTA 협상 당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여론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르게 무역의 외연만 넓힌다면 다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TPP의 경우엔 피해가 농업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소재ㆍ부품 등 다른 산업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 VS 중국…정치외교적 실익은?=미국이 TPP를 주도하고 있다면, 중국은 비슷한 성격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경제 주도권을 이끌어가려 한다. RCEP에 참가하는 국가는 16개국으로 아세안 10개국(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등)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다. TPP와는 7개국(일본,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이 겹친다.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미국은 한국에 TPP참여를 요청해왔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 및 우방국의 위치를 생각할 때 TPP 합류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자 거대한 시장인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도 쉽지 않다. 경제적 실익뿐만 아니라 북한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초조한 것은 재빠른 일본의 움직임이다. 일본이 적극적으로 TPP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한국의 어정쩡한 움직임이 경제적 손실은 물론 새롭게 재편될 글로벌 무역 판짜기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TPP 협상이 연내 타결된다고 해도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12개국이 내놓은 타결안을 보고 각 품목별 개방 수준을 면밀히 검토해 우리 입장에서의 득실을 따져보는 것”이라고 말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이자영·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