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밖에서는 입담 좋은 ‘깐족 MC’지만 집에만 들어가면 ‘살림바보’가 된다. 라면 2개를 투하한 뜨거운 냄비를 무심코 집다 화들짝 놀라기 일쑤고, 허물 벗듯 외출복을 내던지는 건 일상이다.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던 빨래는 제 때 꺼내지 않아 쉰내가 난다. 누워서도 TV를 볼 수 있는 저 기이한 안경은 뭘까. 방송인 전현무(36)다. (MBC ‘나 혼자 산다’)
#2. 톱모델의 하루는 우아했다. 잘 짜여진 아침 식단을 챙겨먹고, 몸매 관리를 위한 필라테스도 빼놓지 않는다. 나를 위한 건강한 삶의 시작이었다. 다만 혼자 사는 그녀에게도 ‘먹는 것’은 치열했다. 모델의 도도함은 엄마와 함께 하는 ‘백숙 먹방’에 산산조각났다. 모델 장윤주(33)다. (MBC ‘나 혼자 산다’)
이젠 스타도 이웃도 ‘나 혼자 산다’. 대한민국의 25%가 1인가구인 시대, TV에선 싱글턴(singleton)의 리얼 라이프를 소환했다.
최근 방송가에선 싱글턴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1인가구 드라마를 표방하고 등장한 ‘식샤를 합시다(tvN)’,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올리브, 이하 ‘마트당’)’을 비롯해 싱글턴의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확장판 1인가구 예능 ‘펫토리얼리스트(온스타일)’과 ‘슈퍼독(KBS2)’도 있다. 싱글턴은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싱글턴 시대가 찾아오는 이유에 대한 진단(개인주의와 여성 정체성 강화, 평균수명 연장, 통신혁명, 대도시의 형성 등)은 복합적이지만, 수명 연장의 시대엔 누구라도 혼자가 될 수 있다(‘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고 판단한다. 결국 혼자 사는 가구는 부쩍 늘었다. 지난해 통계청은 대한민국 네 가구 중 하나는 1인가구이고, 2030년엔 세 가구 가운데 하나 즉 35%는 싱글턴이 되리라고 전망했다. 이제 브라운관의 고민은 ‘혼자 사는 당신에게 가장 큰 불편함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결국 먹어야 살고, 즐거워야 하고, 외롭지 않아야 버틴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세 가지가 1인가구 콘텐츠를 관통했다.
케이블채널 올’리브에선 지난 21일 ‘마트를 헤매는 당신을 위한 안내서’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마트당’은 대형마트에서 팔고 있는 모든 가공식품을 재가공해 맛볼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한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한 1인가구를 위한 지침서(옥근태 PD)”였다. 혼자 온 손님들을 배려하는 식당을 찾아도, 그 과한 배려에 다시금 혼자임을 되새기는 ‘소심한 싱글턴’에게 안성맞춤인 셈이다. tvN ‘식샤를 합시다(28일 첫방송)’도 그 연장에 있다. 드라마는 1인가구의 라이프 스타일에 ‘먹방(먹는 방송)’ 소재를 끌어왔다. 드라마에 흐르는 스릴러 코드는 ‘복합장르’의 묘미까지 살리고 있다. “1인가구에게 가장 민감한 음식(먹방)과 안전(스릴러)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 안에 녹이며 혼자 사는 사람들의 관계 형성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박준화 PD)”는 것이 기획 취지다.
아예 다른 차원의 접근도 있다. 국내 최초의 견공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독(KBS2)‘과 ’펫토리얼리스트‘는 확장된 1인가구 겨냥 콘텐츠다. ‘슈퍼독’의 이은형 PD는 “1인가구의 증가가 애견시장의 확대를 불러왔다”는 점에 착안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서바이벌 형식의 개 오디션엔 실제로 수많은 1인가구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 PD는 “미혼자부터 돌싱, 상처한 참가자에 이르기까지 의외로 싱글들의 참여가 높아 놀랐다”며 “외로운 현대인이 따뜻함을 찾기 위해 반려동물으로 가족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이었다”고 해석했다. 예심에 도전했던 참가자들은 “사람은 배신을 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 “개는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반려동물과의 ‘동행’은 구하라, 제아, 홍종현 등 싱글턴 스타들을 통해 브라운관으로 들어왔다. 온스타일의 ‘펫토리얼리스트(12월7일 첫방송)’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교감을 나누자는 취지이지만, 이 안에도 ‘싱글턴 코드’가 읽힌다. 정종선 PD는 “싱글턴 중엔 반려견을 키우거나 키우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며 “세 싱글을 통해 애완견과의 생활을 보여주며 정보를 제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자’는 것에 의미를 뒀다”고 설명했다.
1인가구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는 현재 지상파보다 케이블 채널로의 쏠림현상이 두드러진다. 2049(tvN, 올리브), 2034(온스타일) 세대로 시청 타깃층이 명확한 케이블 채널에 신소비층으로 부상한 ‘선택형 1인가구’ 세대는 공략하기 쉬운 대상이다. 최근의 유통가가 쇼핑 패러다임을 바꾼 ‘싱글슈머’를 겨냥해 감성 마케팅을 펴는 것처럼 콘텐츠 역시 같은 방식으로 공략했다. 싱글턴의 범주는 단순히 미혼인 세대를 뛰어넘지만, 이들의 타깃은 ‘현재형 싱글턴’이다. 당연히 궁색하고 볼품없는 싱글턴은 없다. 소위 말해 ‘화려한 싱글’로 불리는, 혹은 그러기를 희망하는 ‘현재를 즐기자’는 트렌드세터를 위한 맞춤형 콘텐츠인 것이다.
때문에 “라면 하나를 먹더라도 자기 취향대로 바꾸는 모디슈머(modisumer)를 겨냥(’마트당‘ 옥근태 PD)”했고, “아로마테라피 등의 애견정보를 소개하기도 하고,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삶, 반려견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삶을 고민(‘펫토리얼리스트’ 정종선 PD)” 한다.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을 잘 살 수 있을까”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식샤를 합시다’)에도 집중한다. “누구나 외롭고 고독한 현대인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힐링코드(‘식샤를 합시다' 박준화 PD)”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도 일종의 상품이다. 싱글턴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주목받으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상품화됐고 대중문화는 이러한 경제현상을 반영했다”며 “결국 가족중심의 문화는 싱글턴의 문화로 바뀔 수밖에 없다. 결혼제도가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지금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사회 전반으로 떠올랐다.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은 단지 웃음을 주는 게 아닌 공감을 찾고자 하는 것이 트렌드다. 싱글턴은 대중문화가 다루기에 흥미로운 소재인 동시에 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접근이다”고 평가했다.
고승희 기자/[사진제공=KBS, 온스타일, 올리브, 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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