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과 창조경제의 정의는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론으로 이해하자면 전혀 다를 게 없겠지만 실제 내용을 구체화시키기에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과학을 업으로 삼는 학자가 창조를 마다하거나 지연시킬 까닭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기존에 경제 환경에서 창조 경제를 구현한다면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그런 경제연구를 게을리 할 경제학자가 있겠는가? 기업가 또한 경제적 이윤이 보장되는 창조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자를 아끼려 하겠는가?

창조과학과 창조경제는 과학자와 경제, 사회학자, 기업가가 하나가 되어 새롭게 건설해 가는 사회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과학이 우선하여 창조되어야 하는데 사실 과학이란 창조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 기존에 있는 물리, 화학적 지식에다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게 연구다. 이 연구를 창조라고 한다면 창조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개념적 정의는 창조가 아니다. 새로운 지식을 찾아낸 것, 즉 발견이다! 여기서 선행하여 이해해야 할 대상이 있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 이다. 이 대상은 아직도…… 많다는 걸 전제하고 있다. 얼마나 많을지에 대하여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 지식을 찾아내는 게 연구인데 창조는 바로 연구하는 방법에 유효하고 그래서 새로운 실험과 그 결과가 새로운 지식을 더하게 된다면 그건 창조적 지혜라고 정의하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혜는 지식에 다가가기 위한 다리이지 지혜 자체가 지식을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창조경제 또한 과학과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경제도 과학지식처럼 일반화 되어 있고 우리의 현실이 증거 하듯이 일상화 되어 있다.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변화가 사회의 역동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그 사회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듯 창조라는 개념을 과학이든 경제이든 특정 분야에 적용할 때 더하거나 끼어드는 역할 가지고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란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까? 사실 창조라는 개념은 독립적이면서 자립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경제가 우리의 일상 전반을 지탱하는 에너지의 총칭이라면 독립적이면서 자립적인 창조경제는 완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시발점임과 동시에 진행 과정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가능한가? 우리의 경험은 불가능하다는 걸 증거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가능성을 우리나라, 우리 사회가 열어갈 수가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꿈이라고 지레 포기하지 않을까? 그러나 누군가는 희망을 갖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여 그 꿈을 이룬다면? 다음 글부터는 그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우주의 설계도를 훔치다 著者 김상수 박사)

헤럴드생생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