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을 독립된 산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와 케네가 ‘경제표’란 논문을 발표했을 때, 그는 농업만이 부를 창조하고 상·공업은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기술했다. 그 때까지 제조업은 농업 생산을 위해 농기구를 만들고 음식 담을 그릇을 굽는 정도의 부수적인 일로 치부됐던 것이다.
산업은 생산적인 활동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산업이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증가시켜 경제발전과 복지수준 향상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제조업을 산업으로 보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였고, 그로부터 200년간 세계경제의 구호는 ‘제조업이 선도 산업’이 됐다.
상공업이 산업을 주도하던 시기, 금융은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 금융은 기업과 상거래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자금 조달’ 기능으로만 여겨왔다. 이런 연유로 금융정책은 단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보조정책으로 취급했다.
그런데 금융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금융 자체가 독자적인 상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파생상품이다. 파생이란 이자율과 환율, 주가 등 원래 금융상품에서 파생돼 나온 다양한 가공상품을 의미한다. 마치 우유라는 농산 원료에서 버터, 치즈,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가공품이 나오는 것처럼 기초 금융상품에서 다양한 파생상품이 나온다.
금융파생상품은 1972년 달러화가 변동환율제로 이전한 것을 계기로 생겨났다. 농산물에 대한 선도거래는 오래전부터 시행돼왔지만, 외환 등 금융상품을 대상으로 한 선물거래는 이 무렵부터 시작됐다. 실물을 주고받지 않는 금융파생거래가 처음 시작된 것이다. 예컨대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를 교환하는 금리스왑은 원금은 그대로 두고 실제 차액인 현금만 주고받을 뿐이다. 고정금리나 변동금리라는 것이 손에 잡히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이라도 부동산 담보대출처럼, 부동산이란 실물이 있어 이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였다.
이 새로운 금융거래 방식이 시작됐을 때, 거부감은 컸다. 왜냐하면 현물 없이 현금만 주고받는다면 도박이나 투기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1976년 유로화/달러 이자율에 대한 선물을 도입할 때, 미국 금융당국이 획기적으로 이를 상품으로 인정했다. ‘리스크’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거래할 필요성과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 이후, 주가지수상품과 날씨파생상품이나 경기변동 위험을 거래하는 변동성지수 상품처럼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금융파생상품이 줄줄이 탄생했다.
이제 금융은 스스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산업이 됐다. 이렇다 할 제조업이 없는 싱가포르, 미국, 영국의 경제가 금융을 중심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수출품은 금융상품이며, 영국의 금융계에는 100만 명이 종사한다. 이처럼 금융은 고용을 창출하고 국민의 소득을 증대시키는 거대한 산업이다.
우리나라도 금융 강국이 되려면 하루바삐 금융을 제조업과 묶어 생각하는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파생상품을 포함한 새로운 금융을 독립적인 금융 산업으로 이해해야 한다. 바로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첫 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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