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1980~90년대 오락실은 소위 ’못된‘ 아이들이 가는 곳이었다.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를 넣고 용호의 권, 버블버블, 스트리트 파이터 등을 하며 ’시간을 잊고‘ 있으면, 어느새 부모님이 다가와 “이런 곳은 못된 아이들이나 오는 곳이야!.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며 뒷통수에 불벼락을 놨다.

냉장고 처럼 PC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전국에 초고속 망이 깔린 2000년대부터는 게임을 사이에 둔 부모 자식간 싸움이 오락실에서 가정으로 옮겨갔다. “컴퓨터 끄고 공부 좀 해라”라는 부모님의 불호령과, “오락안하고 컴퓨터로 공부하는 중”이라는 아이들의 대꾸가 서로 맞섰다.

▶게임에 대한 인식전환과 셧다운제의 시작=부모 몰래 게임을 하던 일부 아이들이 자라나 억대의 연봉을 버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게임 키드들이 성장해 한국을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 바꾸어 버리면서 게임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는 한동안 ’프로게이머‘가 됐으며 게임산업은 정부 지원을 받게 됐다. 때문에 게임산업은 날로 성장했다. ‘2012년 게임 백서’를 보면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8조8047억원에 이른다. 이는 3조원대인 영화 음악시장의 두배를 초과하는 것이다. 게임 산업에는 1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종사해 일자리 창출 측면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임비를 마련하기 위해 폭행을 해 입건된 피의자들이 경찰조사에서 “게임중독 때문”이라는 내용의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에 빠져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1년 11월 청소년들의 학습권과 수면권을 보장한다면서 ‘게임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아이들의 게임 시간을 규제한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당시 “청소년 게임중독의 원인은 가정이나 경제, 교육환경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다”며 “게임을 못하도록 강제적으로 막는 것 보다는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에서 탈피하고 경제 및 복지정책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히는 등 반발했다. 하지만 법은 통과 됐다.

계모의 핍박을 벗어나 무도회장에서 왕자님과 함께 춤을 추며 잠시나마 ‘자유’를 느끼다 12시가 되면 무도회장을 벗어났던 신데렐라처럼 아이들은 밤 12시가 되면 ‘로그 오프’를 해야했다.

▶‘마약’이 돼버린 게임=그리고 2013년 11월. 게임은 다시 한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번에는 단순히 “게임하다 좋은대학 못간다”는 부모님의 꾸지람과, 게임시간을 규제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게임을 ‘마약’과 같은 범주에 넣는 법안이 발의 돼, 은유로서가 아닌 법률적으로 ‘게임중독자’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4월 대표 발의해 추진 중인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 법은 중독을 알코올, 마약류, 사행행위, 인터넷 게임 등 4가지 물질 및 행위를 오ㆍ남용해 해당 물질이나 행위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태로 정의했다. 인터넷 게임이 마약과 같은 ‘중독 물질’에 포함돼 버린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게임’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국무총리실 산하로 신설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된다. 또 알코올, 마약 등이 판매, 광고에 제한을 받 듯, 게임 역시 판매, 광고에 제한을 받게 된다. 신 의원 등은 법안 발의문에서 “중독은 중독으로 인한 뇌손상, 우울증 등 중독자 개인의 건강상의 문제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폭행, 강도 및 살인 등 강력범죄의 30%가 음주상태에서 발생하고, 중독으로 인한 근로자의 생산성 저하와 청소년의 학습기회 손실로 이어지는 등 중독자의 가족 및 사회전반에 걸쳐 심각한 사회적 폐해를 초래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야당, 게임산업계의 극렬한 저항=후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게임이 알코올, 마약과 같이 중독 물질로 규정됨에 따라 판매, 광고 등에 제한을 받게될 게임개발자의 반발이 극렬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K-IDEA, 이하 게임협회)는 지난달 24일 ‘중독법은 게임산업에 대한 사망선고’라는 성명서를 냈고 홈페이지에 조기를 걸었다. 협회는 성명서에서 “게임산업은 콘텐츠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10만 명의 산업역군들이 땀 흘려 종사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산업”이라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우수산업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사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게임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즉각 돌입해 이달 12일 현재 서명자가 24만명을 돌파했다. 게임협회 회장이며, 신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남경필 의원은 “게임산업은 중독 물질이 아니라 더욱 성장시켜 나가야 할 효자산업”이라며 “게임업계가 자율규제를 만들고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토론하며 결정하는 슬기로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민주당 측의 반응은 더 거셌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요즘 게임업계가 참 뜨겁다. 게임을 마약과 동일시하고 그 수준의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법리에도 맞지 않는 말”이라며 “겉으로는 육성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규제의 칼을 꺼내드는 꼰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신의원 측은 전 병원의 발언에 대해 “망언에 가까운 발언”이라며 “(게임)중독으로 고통받는 침묵하는 수백만의 가족들을 폄훼하였다”고 맞섰다.

▶“핵심은 그게 아니다”=게임을 마약으로 규정한 ‘게임중독법’ 논쟁이 게임업계와 정치권 간 논쟁이 되고 있는 사이, ‘핵심이 그게 아니’라면서 문화계 인사들도 가세했다.

가수 신해철 씨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게임 중독이 과연 약물 중독과 같은 차원인가하는 논쟁은 핵심이 아니다”라며 “오만한 공권력이 함부로 개인의 삶과 가치를 규정하는데서 생기는 해악은 게임 중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악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게임중독자가 생겨나는 원인은 게임 밖의 세상이 거지같기 때문”이라며 게임 중독자를 관리하기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바로 잡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게임중독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고 본다”면서, “알콜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에서 ‘중독’이라는 말은 축어적 의미로 사용된 반면, 게임중독에서 ‘중독’이라는 말은 외려 은유적-비유적 표현에 더 가깝다. 게임중독을 대단한 질병이나 범죄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