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 일과 격해지는 주도권 싸움…김치의 국제정치학

中, 드라마 대장금 인기타고 관심 커지자 ‘쓰촨성이 발상지’ 中정부·기업 혼연일치 중국화 통해 전략산업 육성 숨은의도

인천공항 면세점 구매자 41%가 중국인 김치 對中 수출길은 검역규제로 막혀

[베이징=박영서 특파원] 우리나라 김치와 김장 문화가 오는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김치를 놓고 벌이는 한ㆍ중ㆍ일 삼국의 전쟁에선 밀리는 양상이다.

중국의 ‘파오차이(泡菜)’는 ‘우리가 김치의 원조’라는 ‘김치공정’을 펼치면서 한국의 위상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대대적인 정부 지원과 물량공세를 통해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한국의 입지를 무너뜨릴 기세다. 일본의 ‘기무치’도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한국의 김치수출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김치 종주국’으로서 한국이 김치전쟁에서 중·일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범정부 차원의 ‘김치 로드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中의 ‘김치공정’=중국 베이징 곳곳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는 한국 음식이 바로 김치다. 한국인이 밀집해 살고 있는 왕징(望京)의 한 재래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조선족 정숙월(48) 씨는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한국 파오차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정 씨는 “사각사각 씹히는 상큼한 맛에다 한류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더해져 찾는 중국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김치를 모르는 중국인들은 거의 없다. 김치는 지난 2003년 사스(SARS)가 발생했을 때 중국인의 관심을 크게 받았다. 중국의 주요 언론들은 “한국 사람이 사스에 걸리지 않은 것은 김치를 즐겨먹기 때문”이라며 김치의 효능을 소개했다.

특히 지난 2005년 중국에서 외국 드라마로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대장금’은 한국 김치에 대한 중국 내 수요를 크게 늘리면서 김치의 위상을 높였다. 이후 중국에서 김치는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중국인에게 각인되었다. 최근 5년간 인천공항면세점에서 팔린 김치의 41%를 중국 여행객이 사갔을 정도다.

그런데 뜬금없이 ‘김치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바로 ‘김치공정’이다. ‘김치공정’이란 고구려·발해를 중국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에 빗댄 표현이다. 1500년 전 쓰촨(四川)성에서 만들어진 ‘파오차이(泡菜)’가 한국으로 넘어가 김치가 됐다는 주장이다. 김치독의 원조도 중국 쓰촨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충칭(重慶)이 김치의 발상지라는 주장도 나왔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신랑(新浪)은 당나라 장군 설인귀가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그를 수행했던 부하가 자기 고향의 절임채소 음식을 한반도에 퍼뜨려 김치의 기원이 됐다고 전했다. 그 부하의 고향이 충칭시 장베이(江北)현 다완(大灣)촌이라는 설명이다.

쓰촨의 파오차이는 무, 당근, 배추 등이 주재료다. 여기에 고추, 생강, 피망, 마늘을 첨가한 후 소금, 식초, 설탕, 바이주(白酒)를 섞어 만든 물에 담가 고온발효시켜 만든다. 보통 2~3일이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 김치와는 제조법이나 맛, 형태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김치는 배추를 주원료로 절임을 한 후 양념과 함께 저온에서 발효시켜 먹는다. 유산균을 함유한 우리나라 김치와는 맛과 품질에서 비교될 수가 없다.

▶한국김치를 따라잡는다=그럼에도 우리나라 김치를 ‘파오차이의 짝퉁’이라 주장하는 이유에는 김치를 중국화해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미 정부와 기업이 혼연일치가 되어 내수와 수출 확대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고있다.

쓰촨성 정부는 ‘쓰촨 파오차이 5개년 발전계획’을 수립해 각종 기술개발 및 자금지원에 나서고 있다. 또한 표준화된 파오차이 전용 채소원료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며 관련 기업들의 규모도 확대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고향인 쓰촨성 메이산(眉山)시가 핵심거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곳에 파오차이 관련기업들이 집중되고 있으며 매년 국제포럼과 파오차이박람회도 개최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0년 쓰촨성의 파오차이 생산량은 150만t, 매출액은 120억위안(약 2조880억원)에 달했고 지난해에는 생산량 200만t, 매출액 150억위안(약 2조6100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더욱 늘어나 2조8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김치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2015년에는 300억위안(약 5조22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 일본, 한국, 미국, 호주, 유럽연합, 동남아시아 등 세계 30여개국에 파오차이를 수출하고 있다. 수출량은 300만달러로 미미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쓰촨요리의 시장장악력 등이 파오차이의 도약을 도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쓰촨성 정부는 앞으로 파오차이를 한국의 김치, 유럽의 피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파오차이’로 성장시킨다는 야심이다.

▶대중(對中) 수출길은 막혀있어=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김치의 국제수지는 지난 2009년부터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김치 수입물량의 99.9%는 중국산으로 국내시장은 중국산에 압도되어 있다.

반면 한국 김치의 대중 수출길은 막혀있다. 중국이 한국 김치에 대해 국제식품규격 대신 중국 국내 규정인 ‘절임채소 100g당 대장균군 수가 30개 이하’라는 검역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임채소로 구분된 김치는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진 유산균이 미생물 범주에 포함되어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김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더구나 김치는 중국에선 적절한 중문이름을 갖지 못한 채 ‘한궈파오차이(韓國泡菜)’로 불려져 중국 파오차이와 혼동되는 실정이다. 고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독자적인 제조표준도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중국에서 김치는 파오차이의 한 부류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