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지난 4일 오후 3시께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동대문 구청 앞 쉼터 벤취. 깊어가는 가을 정취 사이로 감미로운 섹소폰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쁜 걸음을 멈추고 쉼터로 얼굴을 빼꼼히 들이미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다 말고 모여든 사람들, 어느새 쉼터는 관객 30여명이 모인 작은 공연장이 됐다.

섹소폰 연주자는 근사한 턱시도 대신 순찰복을 입고 삼단봉과 수갑을 허리춤에 찬 경찰,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신지구대 천명기(36) 경장이었다.

이날 천 경장은 팝송 ‘마이웨이’, 나훈아의 ‘무시로’, 이문세의 ‘난 아직모르잖아요’ 등을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자리에 있던 이해란(46ㆍ여ㆍ이란에서 귀화) 씨는 “경찰을 마주치면 죄지은 것도 없는데 무서워 돌아가곤 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걸음을 멈추고 다가갔다”고 말했다.

2001년 서울지방경찰청 경찰악대 경찰로 입문한 천 경장은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지구대 발령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던 중 섹소폰 연주를 들려주기로 한 것이다. 연주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천 경장이 섹소폰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 2005년의 강렬한 기억때문이다. 당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은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경찰과 대치중이었다. 천 경장은 경찰악대 대원으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야외공연을 준비중이었다. 연주가 시작되고 이소라의 ‘난 행복해’가 흘러나왔다. 경찰과 대치중이던 시위대들이 하나둘 씩, 악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잠시였지만 하늘을 찌를듯한 격렬한 시위 구호와 이에 맞서는 경찰들의 구령소리는 사라졌다. 오직 감미로운 멜로디만 들릴 뿐이었다.

천 경장은 “서슬퍼런 시위대가 우리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목격하고 ‘음악의 힘이 이래서 위대하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며 “섹소폰으로 시민들과 경찰을 잊는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