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정부 “蘇해체 반면교사 대상” 공산당 현 지도체제 유지 주장 정치개혁 옹호 자유파선 반발
[베이징=박영서 특파원] 중국에서 ‘소련 논쟁’이 일고 있다. 정치적으로 좌편향인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해체된 소련을 반면교사로 삼아 공산당의 지도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헌정 도입 등 정치개혁을 옹호하는 ‘자유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소련 붕괴에서 교훈을 배운다’는 기사를 통해 이 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 동부 장쑤(江蘇)성의 공산당 지도자 뤄즈쥔(羅志軍) 당서기는 최근 현지 공산당위원회의 핵심간부들을 의무적인 학습 프로그램에 호출했다. 이들은 소련의 해체과정을 6부로 구성한 다큐멘터리 영화 ‘소련 멸당·멸국 20년 추모’를 단체로 시청했다.
중국의 한 퇴역 장성이 제작한 이 영화는 전성기 소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곧 1990년대 소련에서 일었던 소요와 불안한 정국 장면으로 바뀐다. 이후 불길한 음악이 흐르면서 소련이 처한 운명을 슬퍼하는 소련 공산주의자들을 담으면서 끝이 난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영화 상영이 끝나자 뤄즈쥔 당서기는 참석자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정확히 이해하라”고 촉구했다.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소련 붕괴의 원인이 공산주의 체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체제를 배신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이후 전국의 당 회의에서 상영되고 있는 이 영화는 시진핑 주석이 시작한 이데올로기 운동의 일환이다.
소련 멸망사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보다 오히려 레닌주의 정치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시 주석의 생각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당 관계자와 연구자들은 이 같은 사상운동이 미디어, 교육, 대중문화 등 평화적 수단을 통해 서구 사상을 점진적으로 전파, 중국 공산당을 전복시키려는 미국의 음모에 대항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중국 내 소련역사 연구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자들은 소련의 붕괴는 고르바초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재돼 있던 정치·경제 체제의 심각한 결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공산당 간부양성기관인 중앙당교의 소련역사 전문가 줘펑잉(左鳳榮) 교수는 “이 영화에는 합리적인 분석이 결여돼 있다”면서 “스탈린주의 체제 옹호가 주 목적으로, 당원 교육을 위한 영화로는 오해를 살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내 비판적인 지식인들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베이징의 한 인권변호사는 “이 같은 영화는 정치개혁에 반대하는 공산당의 입장을 선전하는 것”이라면서 “헌정 도입, 언론 자유 등 정치개혁은 이번 정권하에서는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