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4> 저 높은 곳을 향하여 (15)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어느새 인민광장 로터리 한쪽 구석에 모인 이방인들은 여섯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강유리, 움라우트 패튼, 예원희, 통역원, 신희영 회장, 그리고 망설이던 끝에 신희영을 따라온 박박진진… 하지만 곧 일곱 명이 될 상황이었다. 강유리와 전화로 약속을 정한 강준호는 어디쯤 오고 있을까?
“이 외국 신사 분은 누구신가?”
신희영이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움라우트 패튼 회장이었다. 그러자 그 말에 가장 먼저 나서서 대답한 사람은 뜻하지 않게 통역원이었다.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이었지만 신혼여행 분위기로 착각한 탓에 저지른 실수였다.
“이 세상에서 으뜸 갑부이며 장차 강유리 선수의 신랑이 될 움라우트 패튼 회장님이십니다. 그러시는 사모님께서는 혹시?”
“뭐라고요? 강유리 선수의 신랑?”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당황한 쪽은 오히려 강유리였다. 물론 움라우트 패튼 회장도 머쓱하긴 매일반이었다. 그는 통역원과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고 난 직후였는데… 아무래도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통역원은 분위기 파악에 젬병이었다.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변한 신희영의 태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그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사모님께서는 혹시 강유리 선수의 어머님? 하하하, 맞지요? 패튼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장모님과 만나셨어요.”
“촹모… 뉨? 오우, 프라우 강? 나이스 투 밋츄!”
움라우트 패튼 회장은 무조건 인사부터 전하고 볼 일이었다. 듣기로는 장인어른을 만나기로 했던 것 같은데 장모가 먼저 나타나다니 자못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장모 옆에 따라온 젊은 남자는 처남임에 분명했다. 따라서 그는 박박진진을 향해서도 매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야만 했다. 물론 통역원에게 새로운 단어 하나를 얼른 물어본 직후였다.
“오우, 처남! 팡가워요.”
분위기는 일순 어지럽게 돌아갔다. 신희영 회장이 강유리 선수의 장모가 되고, 신희영의 젊은 연인 박박진진이 강유리의 오빠로 오인된 이 순간을 과연 어떻게 모면해야 할까? 예원희 조차 이게 웬 일이냐는 투로 두 눈을 껌벅이기만 할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중이었으니 아버지 강준호를 만나기 위해 모회산 식당으로 찾아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움라우트 패튼 회장의 팔을 잡아끌어 멀리 보이는 모회산 공원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 조용한 공원 귀퉁이에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관계정립을 다시 해야만 할 것이란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악재는 연이어 찾아온다고 했던가? 마침 그들 옆을 스쳐 지나가던 103번 시내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는데…
“유리야, 강유리! 아빠다, 아빠!”
아뿔싸, 차창을 활짝 열고 목을 길게 뽑아낸 채 외치는 사람은 바로 강준호였다. 낯선 외국 땅에서 홀로 버스를 타고 달리던 그의 눈에는 오로지 강유리만이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모회산 식당을 찾지 못해 애먹던 그는, 강유리와 통화하던 중에 103번 버스 정류장 옆에 그 식당이 있다는 말을 떠올렸다. 따라서 103번 버스를 타고 정류장마다 두리번거리던 중에 유리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고… 너무나 반가웠기 때문에 주위에 둘러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저 인간은… 강준호 프로 아닌가요? 그런데 방금 뭐라고 했지요? 강유리 선수 아빠라고? 이게 웬 난리야? 그러고 보니 둘 다 강 씨 맞네.”
일이 이토록 꼬인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멀리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강준호는 숨이 턱에 닿도록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헉헉거리는 그의 밭은 숨소리가 200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을 이곳까지 거칠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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