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서 소름끼치는 악역 호평
송강호와 대적하는 몰입연기 감탄 ‘남자가 사랑’선 따뜻한 남자 변신
“변호사양반 당신 눈엔 6ㆍ25가 끝난 것 같지? 휴전이야, 휴전! 근데 요새 사람들은 배부르고 등따시니깐 전쟁이 끝난 줄 알아. 왜 그런 줄 알아? 나같은 경찰이 이 나라의 치안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나마 유지되는 거야! 변호사라는 양반이 나라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변호인이란 사람이 국가가 뭔지도 모릅니까!”
지난 14일 누적관객 947만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10위에 오른 ‘변호인’에는 객석의 소름과 전율을 이끌어내는 두 장면이 있다. 극중 경찰의 비밀가옥을 찾은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을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이 흠씬 구타한 후 내쫓는 순간, 거리에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일순 표정과 동작을 바꿔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하나다. 또 다른 대목은 법정에서 송우석과 차동영이 변호인과 증인으로 맞서는 장면. 두 개의 ‘신념’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서슬퍼렇게 맞부딪힌다. 마치 두 마리의 숫사자가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 포효하고 으르렁대는 형국이다. 송강호야 두말 할 나위 없지만 ‘당대 최고’로 꼽히는 선배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대적하는 곽도원의 기세가 객석의 감탄을 자아낸다.
천만을 앞둔 영화 ‘변호인’은 배우 곽도원(40)에게도 날개를 달아줬다. 곽도원은 영화에서 1980년대 용공조작의 중심에 서는 경찰을 연기했다. 국가와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될 수도 있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인물로 권위주의 시대, 국가권력의 공공연한 폭력을 대리하는 역할이다.
곽도원은 자신의 ‘먹잇감’을 으르고 달래고 압박하고 회유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뤄가는 극중 캐릭터와 완벽하게 몰입된 연기로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로 떠올랐다. 2011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1990년대 초 법조계의 부패상과 직업적 확신이 절묘하게 결합된 검사 역할을 통해 거물급 조연의 탄생을 알린 후 약 3년 만이다.
‘변호인’에 이어 곽도원은 22일 개봉하는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도 존재감이 막강한 조연으로 출연했다. 전작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다. 남의 빚을 받으러 다니는 밑바닥 인생의 동생(황정민 분)을 둔 형 역할이다. 마흔이 되도록 자신의 집에 얹혀 사는 동생을 마치 원수 대하듯 윽박지르지만 따뜻한 속내를 감춘 남자. 무표정으로 펼쳐놓는 능청과 너스레로 웃음을 준다.
곽도원의 차기작은 ‘써니’의 강형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타짜-신의 손’이다. ‘타짜’의 속편으로 곽도원은 최승현ㆍ김윤석 등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최근 스크린과 TV를 넘나들며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여주지만 곽도원의 무명생활은 길었고, 배우경력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아동극 전문극단도 차려봤지만 이내 문을 닫았다. 20대 중반 연희단거리패의 밀양연극촌에서 다시 재기를 다지며 한때 주역도 맡았으나 선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결국 몇 년 만에 쫓겨났다.
30대가 돼서야 영화로 눈을 돌려 오디션에 줄을 서기 시작했으며, 그가 출연한 짧은 영화 한 편이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전계수 감독의 눈에 띄면서 ‘러브픽션’에 출연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조금씩 영화계에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황해’를 건너 ‘범죄와의 전쟁’에 와서 비로소 확실한 조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영화 ‘점쟁이들’ ‘회사원’ ‘베를린’ 등과 드라마 ‘유령’ ‘굿닥터’에 출연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