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서울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1960년대만 해도 한강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과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한강에 얼음이 얼면 강변에서 조약돌을 던져 한없이 미끄러지게 하고 수백명이 썰매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지치는가 하면, 날이 풀리면 아낙네들이 빨래터에서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는 추억의 공간일 때가 있었다.

더 거슬러 가 조선시대 한양의 왕족과 선비들은 한강변에 정자와 누각을 만들어 놓고 절경을 감상하면서 풍류를 즐겼다.

한강은 유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퇴적과 침식을 반복하며 새롭게 섬이 만들어졌다가 또 하나 둘씩 사라졌다. 평소에는 육지와 백사장으로 이어져 있다가 큰 물이 흘러넘치면 섬이 되었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육지와 연결되기도 했다.

큰 섬을 꼽으라고 하면 팔당 하류부터 당정섬(미사리 섬), 석도(무학도), 잠실도(잠실섬), 뚝섬, 저자도, 율도(밤섬), 여의도, 난지도 등이 있었고, 부리도, 무동도, 반포도(서래섬), 노들섬(중지도), 백마도와 같은 작은 섬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한강의 섬들이 이름만 남고 흔적조차 없어지게 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공유수면 매립과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본격화한 한강 종합개발 때문이었다. 이후 드넓은 백사장과 10여개의 섬들이 띄엄띄엄 아련한 풍경을 만들어 냈던 한강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반면에 새로운 섬들도 만들어졌는데, 선유도는 본래 높이 40m의 선유봉이었다. 지금의 합정동 절두산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18세기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 ‘선유봉’에서도 보여주듯 그야말로 양화진의 절경이었다. 그러던 것이 여의도 비행장 건설과 한강 제방축조용 골재로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해 결국 ‘섬’이 되는 기막힌 신세가 됐다.

과거 ‘수난’을 극복하고 극적인 변화를 통해 글로벌 도시 서울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서울의 섬들’을 되돌아 보는 것은 흥미로운 시간 여행이 될 듯하다.

서울 섬의 맏형, 여의도

서울 섬의 맏형격인 여의도는 한국의 정치, 금융, 언론, 문화의 중심지이다. 하루 활동 인구가 50만 명에 이르고 국회의사당과 KBS, MBC, SBS 등 3대 방송사, 증권거래소와 국제금융센터(IFC) 등과 같이 서울은 물론 한국 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들이 즐비하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상상이 힘들지만, 1960년대 여의도에는 말목장과 비행장이 들어서 있었다. 65만 평에 이르는 부지의 비행장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성된 것으로 여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이전의 여의도는 딱히 ‘섬’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한강의 흐름에 따라 모양새가 바뀌는 드넓은 백사장이었다.

1967년,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김현옥 서울시장의 주도로 한강개발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그 첫 대상으로 여의도가 선정되었다. 여의도 주변에는 돌과 흙, 모래로 쌓인 둘레 7.6km의 둑이 생겼고, 둑 안쪽에 간척을 통해 불과 110일 만에 새로운 지형의 섬이 만들어진 것이다.

둑이 완성된 이후에는 국회의사당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비행장과 땅콩밭이 있던 곳에는 방송사, 증권거래소, 증권사 등이 터전을 잡았다. 한 때 모래사장이었던 여의도는 오늘날 3만 명이 넘는 거주인구와 7,000개를 넘는 사업장에 50만 명의 유동인구가 발생하는 ‘비즈니스 지구(business district)’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서울의 도심으로 자리잡아왔던 광화문-종로 지역에 비하여 여의도는 인공적인 개발을 통해 발생한 서울 최초의 부도심 중 하나가 되었으며, 특히 그 한 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공터는 아스팔트 광장으로 조성됐다. 한 때 5.16 광장이라고 불렸다가 얼마 후에 여의도 광장으로 개칭하였다. 1997년부터 여의도광장의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여 1999년 1월에 여의도 공원으로 개장하였다. 공원 안에는 한국 전통의 숲, 잔디마당, 문화의 마당, 자연생태의 숲 등 4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뉴욕에 센트럴파크, 런던에 하이드파크가 있다면 서울에는 여의도공원이 있다. 27년간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던 여의도 광장이 숲과 잔디, 물이 어우러진 도심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처럼 여의도는 한국의 정치, 금융, 언론,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쉽게 자연을 접하면서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민들이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생명의 공간이다.

상전벽해 난지도

서울의 극적인 변화와 부침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난지도를 들 수 있다. ‘난초와 영지가 자라는 섬’이라는 의미에서 ‘난지도(蘭芝島)’라고 불리던 이 섬은 조선시대에는 꽃과 풀이 많다는 뜻에서 ‘중초도(中草島)’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꽃섬’이라고 불리던 난지도는 인기 있는 신혼 여행지이자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단골 데이트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변한 것은 1978년에 난지도가 쓰레기매립지로 지정되면서 부터다. 쓰레기매립지인 잠실, 상계동, 구의동 지역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되면서 대체장소를 찾던 정부는 당시만 해도 서울 외곽이었던 난지도를 새로운 매립지로 지정한 것이다. 난지도의 옛 모습은 사라졌고, 80년대를 대표하는 난지도의 이미지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위에 불도저가 오가며 쓰레기를 누르는 모습이었다.

포화로 인해 폐쇄된 1992년까지 14년 동안 난지도에는 9,200만 톤의 쓰레기가 90m 높이로 쌓였다. 때문에 당시 이 곳은 쓰레기가 내뿜는 악취로 숨을 쉬지 못했을 정도였고 쓰레기가 분해하면서 생기는 메탄가스 등으로 화재로 끊이지 않는, 서울의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던 난지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은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을 이 일대에 건립하기로 하고 주변에 ‘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 공원’ 등을 조성하면서 생태공원으로 복원한 것이다. 이들 공원은 봄에는 하얀 띠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척박한 쓰레기 매립지에서 1,000여종의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거듭난 난지도는 엄청난 생명력에 대한 신비로움은 물론 경외감까지 느끼게 하는 섬이다.

임금님의 사냥터에서 시민들의 휴식처, 뚝섬

조선시대에 뚝섬은 임금님의 사냥터였기 때문에 민간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었다. 해방 후에는 살 곳을 찾던 가난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뚝섬에 모여 정착하게 되었고 이 시절의 뚝섬은 대부분 주민들이 만든 밭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후 60년대까지 뚝섬은 서울시민의 대표적인 피서지 및 휴양지가 되었는데, 당시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서울시민들은 바다로 가기 보다는 대부분 한강으로 나와 뚝섬을 비롯한 여러 섬에 걸쳐 널리 펼쳐져있던 백사장에서 수영을 즐기곤 했다.

60년대 한강개발의 물결은 뚝섬에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섬 전체가 곧 공장지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후 80년대에 들어오면서 공장지대는 쇠퇴하고, 당시 새로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경마장, 골프장 등 각종 유흥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

뚝섬 일대는 2005년을 전후로 하여 서울숲 사업을 추진한다는 목표 아래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들어갔다. 약 10년간의 복원사업을 거쳐 뚝섬은 문화예술공원, 자연생태숲, 자연체험학습원, 습지생태원, 한강수변공원 등 5개의 테마로 이뤄진 복합문화공간이자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현재 서울숲 공원은 여의도 면적의 약 5배로서 그 옛날 임금이 말을 달리며 사냥하던 시절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서울의 미래 세빛섬

세빛섬은 앞서 소개한 한강의 섬들과는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 앞의 섬들이 모두 자연섬인 반면 세빛섬은 인공섬이다. 그러나 세빛 섬이 차지하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 세빛섬은 서울시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아름다운 한강의 정취를 느끼고 삶의 여유를 즐기길 원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 인공섬인 세빛섬은 원래 수익형 민자사업(BTO) ‘세빛둥둥섬’으로 출발하여 2009년 공사를 시작해 2011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사업시행 과정에서 많은 난항을 겪으면서 전면적인 개수를 거쳐 2014년 10월에 비로서 개장하였다.

‘세빛’이라는 이름은 빛의 삼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처럼 섬 셋이 조화를 이루어 서울을 빛내라는 기원을 담았다고 한다. 가장 큰 규모인 가빛섬에는 컨벤션 센터가 들어섰고, 나머지 섬에는 전시공간과 수상레포츠, 공연과 식사가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건축학적으로는 대단히 특이한 구조를 자랑하는데, 물 밑으로 인공섬을 고정시키는 구조재가 없이 와이어로만 묶여 있어, 각 섬이 단독으로 물 위에 떠 있는 구조이다. 세빛섬의 특이한 매력은 세계인들에게도 주목을 받아 올해 3월 30일,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2’의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세빛섬은 비슷한 유형의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강의 자랑거리로 내세우기에 충분하다. 외국에도 독일 하노버와 로스톡, 오스트리아 그라츠 등에 유사 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세빛섬은 일단 시설과 규모에서부터 남다르다. 3개의 섬을 연결한 설계구조에서부터 아트갤러리의 초대형 수상 스크린에 이르기까지 이용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 관광객 2,000만 시대를 이끄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