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용산·동작=권지나 기자]젊은이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해방촌은 한때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곳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랬던 해방촌이 몇 년 전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겐 다양함과 따뜻함을, 한국인들에게는 이색적인 풍경을 느끼게 하는 해방촌은 ‘묘한 매력을 간직한 곳’으로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낮과 밤의 모습이 확연하게 다른 해방촌은 낮에는 한적한 카페가 들어선 조용한 거리지만 밤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연신 활기를 띠고 있다. ◇해방촌의 유래 해방촌은 서울시 용산구 용산2가동의 대부분과 용산1가동의 일부가 포함되는 지역으로 용산고등학교의 동쪽, 남산타워의 남쪽, 곧 남산 밑의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곳은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또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부터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해방촌은 본래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이 있던 곳이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해방촌 일대를 접수하기는 했지만 그 통제력이 미치지 못해 실향민이 몰려들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월남 실향민들은 한 때 육군형무소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미국관사로 사용하고 있는 일본군 육군관사 건물을 차지했다. 그 후 미군정청이 이들을 퇴거시키자 실향민들은 그 위쪽 사격장에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해방 후에는 월남 정착민들과 이촌향도(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의 흐름 속에 많은 사람들이 토막집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해방촌은 세월이 흐르면서 평지와 가벼운 비탈에는 저층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서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남산과 가까운 꼭대기 방면은 아직도 당시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이 많다. 1980년대에 봤음직한 골목이 그 모습을 지키며 남아있으며, 20년은 족히 넘었을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과거 해방촌에는 일명 ‘요꼬’라고 불리는 스웨터 공장이 많았다.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일반주택에 재봉틀 몇 대를 두고 소규모로 이뤄지는 형식이었다. ‘요꼬’에서 만들어진 스웨터들은 근처 남대문시장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해방촌의 ‘요꼬’는 하나 둘 문을 닫았고, 그 것을 일거리로 삼았던 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찾아 외지로 빠져나가게 됐다.◇‘예술 마을’로 입소문 난 해방촌남산 자락에 위치한 후암동은 지대가 매우 높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바로 108계단인데,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2,3번 출구를 빠져나와 남산 방향으로 10여 분 남짓을 걷다보면 이 계단이 있다.
108계단을 기준으로 위쪽은 해방촌이고 아래쪽이 후암동이다. 108계단은 구청과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용산구청이 추진한 아트 빌리지, 담장 허물기 사업이 올 초 마무리되면서 108계단을 비롯한 동네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고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설치돼 볼거리가 풍성해졌으며,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 됐다.또한 해방촌에선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경리단길과 연결된 해방촌 골목길엔 이국적인 레스토랑, 카페, 펍이 줄지어 있다. 어느 집을 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대부분 이름난 맛집이다.이렇듯 이국적이고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다양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해방촌의 모습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해방촌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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