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에게 ‘응사’란?”
“9회말 2아웃에서 3진아웃을 잡은 투수! 투수에게 9회말 2아웃은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잖아요. 성취감이 들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순간에 삼진아웃을 잡는다는 건 큰 의미가 있어요. 여운이 많이 남아요.”
극적인 캐릭터를 오갔다. 2003년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 아역으로 데뷔한 유연석(30)은 선량하고 순한 눈빛의 소년(열여덟열아홉ㆍ2011)이 되었다가, 목적만을 향해가는 나쁜 강남오빠(건축학개론ㆍ2012)로 옷을 바꿔입었다. 선한 눈 뒤에 숨은 음울함은 컴플렉스 덩어리(늑대소년ㆍ2012)로 다시 태어났다. 데뷔 10년이 되던 지난해 전국 팔도에서 모인 94학번 새내기를 통해 1990년대 문화와 사랑과 우정을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4’(tvN)의 칠봉이를 만난 그는 뒤늦게 ‘국민 짝사랑’으로 주목받았다. 야구밖에 모르는 천재투수, 남부러울 것 없는 메이저리거의 순애보에 여성 시청자의 마음이 녹아내렸다.
‘어둡고 우울했던, 선악이 뒤섞인 남자’(신원호 PD)를 주로 연기했지만, 유연석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데뷔 10년이 돼서야 기존의 이미지를 바꾼 배역을 만나며 유연석은 뒤늦게 배우로서의 성취감을 맛봤다. ‘짜릿한 역전극’이라는 생각을 가져올 만큼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최근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연석에게 배우 유연석의 이야기를 들었다.
“매 작품, 매 캐릭터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칠봉이 캐릭터를 준비하면서도 그전에 만났던 캐릭터에 접근해온 방식과 다르지 않았어요. 시청자는 저에 대한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었죠.”
신촌하숙 유일의 서울사람이자 우뇌형 남자였던 칠봉이는 드라마 내내 달달했다. 사랑으로 아파본 유연석의 경험이 칠봉이를 통해 묻어난 덕분이었다. 칠봉이 못지 않게 한 곳만을 바라본 나정은 결국 쓰레기(정우 분)와 결혼하며 드라마는 칠봉이의 7년간의 짝사랑은 끝냈다. 그래도 방영 내내 시청자는 두 사람을 ‘사이다(칠봉의 칠+성나정의 성) 커플’로 부르며 응원했다. 유연석도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 “만족한다”며 “연기하는 입장에선 나정이의 남편이 되는 것보다 칠봉이의 진심이 진솔하게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선 서울남자였지만, 유연석도 알고보면 경상도(경남 진주 출신) 남자다. 스스로는 칠봉이와 닮은 점이 많다면서도, “경상도와 서울에서 절반씩을 살다 보니 칠봉이와 쓰레기의 모습이 혼재돼 있다”고 한다. 대놓고 표현하기 보다는 남몰래 챙겨주는 것이 ‘유연석 스타일’이다. 심지어 유연석 역시 ‘응사’ 출연배우 못지않은 사투리 능력자. 그 덕에 드라마에선 칠봉이가 사투리를 따라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도리어 유연석에겐 힘든 촬영이었다. “사투리를 못하는 척하는 게 쉽지 않아 서울 토박이에게 사투리를 써보라고 한 뒤 흉내냈다”고 한다.
놀랍도록 달아오른 대중의 관심에 유연석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도 달라졌다. 광고업계 섭외 1순위에, 진작에 차기작(영화 상의원, 은밀한 유혹)도 결정했다. 드라마를 마친 지금은 유연석에게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다. “사람들의 시선과 달라진 사랑, 기대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학예회에서 연극무대에 오르며 난생 처음 느껴본 떨림에 배우를 꿈꿨고, 고등학교 2학년 서울로 올라와 연기공부에 전념했다. 연기자로의 꿈은 이뤘지만, 무명의 시간은 길었다.
“그 시간동안 즐거울 수만은 없었어요. 조급함 때문에 가슴 졸이던 때도 있었고, 언제 다른 캐릭터와 만날 수 있을지 기약없이 기다리던 때도 있었죠. 그럴 때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운동이나 화초를 가꾸는 취미생활로 정서적인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지금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칠봉이에게 열광하신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이전의 캐릭터가 쌓여 빛을 발한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캐릭터에 한정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변함없는 성원에 대한 보답인 것 같아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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