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권력 암투’, ‘땅콩 회항’ 등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한해, 다사다난(多事多難)을 극명하게 보여준 2014년이 저문다. 출범 3년차를 앞둔 박근혜 정부, 초장부터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성과는 “글세”다. 올해 한해도 갑(甲)질로 표현되는 가진 자들의 횡포와 이들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회피, 관(官))피아로 통칭되는 특정세력 간의 나눠 먹기 식 은밀한 거래, 이권개입 등 부정(不正)의 고리는 견고했다.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등 4대악의 덩어리는 예상보다 커 다루기가 벅찼다. 병영 내 각종 비리와 성범죄, 검찰 관련 고위인사들의 잇따른 성추문 등 기행은 민망의 극치였다. 이를 지켜 본 이들의 심정은 한마디로 분(憤)과 화(火), 그리고 ‘노(怒)’로 축약된다. 이에 헤럴드경제와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공동으로 펼쳐 온 연중기획 ‘사회자본 확충해야 4만 달러 가능하다’는 주제의 좌담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결산 세미나를 통해 국민적 스트레스 진단과 그 해소 방안을 모색했다.
사회적 소프트웨어 대원칙은 투명성…사회구성원 제도·절차 맞추는 훈련을
-사회자(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저는 양적팽창이나 압축 성장을 한 국가의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이 밖의 다른 질적인 부분들은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결국 그동안 우리가 논의해왔던 사회 자본이고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와 경제가 보완해야 할 점입니다. 종합 토론을 시작해보죠.
▶예종석 한양대 교수=우리나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도 압축 성장을 해온 나라입니다. 요즘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에 대한 평가가 과거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내부적으론 부끄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광화문을 지나왔는데 세월호 가족들의 단식농성 텐트가 있었고, 그 인근에 이를 반대해 폭식 투쟁하는 사람들을 이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장관들 ‘짧은 재직’시간·정신적 큰 손실…대기업들 준법·윤리의식 부단한 노력을
▶이은재 한국행정연구원장=저도 지난주에 르완다에 다녀왔는데, 르완다의 한 장관이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잘 지키느냐고 물어봐서 과거 우리의 ‘코리안 타임’이 생각나 속으로 웃었습니다. 한 나라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건 지 새삼 느끼게 된 대목이었습니다. 저희 연구원에서 전 국민 대상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우리 사회 전체의 신뢰지수는 100점 만점에 43점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예 교수=조사 결과대로 신뢰나 배려보다는 갈등과 불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고 때도 그랬듯이 규제가 느슨했던 점도 있겠지만,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었기 때문에 참사가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까도 대한항공 본사를 지나왔지만, 최근 논란이 된 ‘땅콩회항’ 사건이 우리 사회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사회가 맞나 의구심이 들었어요.
▶이 원장=신뢰도 조사 결과 대기업에 대한 신뢰도도 낮게 나타났습니다. 결국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를 국민들께서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대기업들이 준법의식을 갖고 윤리에 부응하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중소기업과 상호 윈-윈 하는 기업 생태계 조성이 필요합니다.
대기업이 소규모 식품회사까지 장악한게 현실…창의적 인재 키울 대학이 취직학원으로 전락
▶예 교수=우리가 보통 기업가 정신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기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웬만한 건 다하고 있거든요. 식당이나 조그만 식품회사까지 모두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어 구멍가게들은 문을 닫게 돼 있습니다. 과연 이런 것이 같은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 듭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제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구멍가게 살리기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 심한 말로 박살이 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값싸고 품질 좋은 대형마트로 가는 게 당연하니까 다른 방식으로 골목상권을 특화시켜야 한다고 했더니 재경부적 시각이라며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모릅니다. 우리사회는 예부터 농촌사회였기 때문에 나눔, 복지 얘기 나오면 사람들이 ‘뿅’ 가요. 하지만 우리는 엄연히 냉혹한 시장경제 사회입니다. 시장경제를 잘 발전시켜서 법인세, 소득세 받고 그걸 다시 국가가 분배하는 방식으로 복지를 해야지 기업에도 복지를 시키고 가격을 통제해버리면 우선은 좋아 보이지만 서서히 망해가는 길입니다.
전후 독일 발전은 연방제 등 정치적 소산…정치도 이슈 위주서 산업구조 중심으로 바꿔야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제가 전에 미국TV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팝가수 자니 캐시, 유명 코미디언 밥 호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있어서 행복했는데 이제 이들 모두 세상을 떠났다” 며 “미국엔 이제 캐시(돈)도 없고, 호프(희망)도 없고 잡스(일자리)도 없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살맛이 안 나는 미국을 빗댄 겁니다.(좌중 웃음) 저는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년 전에 어디 출판기념회를 갔는데, 전직 재무 장관들이 전부 축사를 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잘 되느냐의 문제는 경제장관 보다는 외교·안보 장관을 어떻게 뽑느냐에 달려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도 밖에 나가서 우리가 통일이 돼야 잘 산다고 하는 분들 전부 경제학자들입니다. 전후 독일을 발전시킨 것은 국민성보다는 연방제 등 정치적 발명의 소산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 교수=사회 자본을 키우기 위해선 창의적인 인재육성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학들은 취직학원으로 전락해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경영학이란 전공도 사실 창업 기업가를 키워야하는 학과인데도 요새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입시학원 강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원장=조사를 해보면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낮은데 이를 높이기 위해선 정부조직 개편 때 대규모로 하기 보단 평소 연구결과를 참조해서 필요시에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인사청문회를 굉장히 어렵게 치르는데 이에 비해 장관의 재직기간이 너무 짧아 시간적, 정신적 손실이 큽니다. 한번 임명할 때 잘 선정하고 임명된 장관들에겐 힘을 실어줘서 소신껏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장 교수=정치구조도 이제는 시대에 맞춰 산업구조 중심으로 한 정당구조가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슈 중심의 정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이 선거 전에 있었다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언론이나 지식인 사회도 사회적 헤게모니의 포로에서 벗어나 이런 걸 교정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줘야 합니다.
▶예 교수=생각해보면 신뢰라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지적만으론 해결이 안 됩니다. 기본적으론 엄정한 법 집행이 있어야 되고, 네가 나를 위해 뭘 했냐고 묻기에 앞서 나는 남을 위해 뭘 했냐 물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사회자=저는 사회적 소프트웨어의 가장 큰 원칙은 투명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제도·절차가 의도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훈련을 쌓아가는 것이 사회자본 확충의 길입니다. 헤럴드경제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년간 공동으로 사회자본에 대해 연구를 해 왔는데 계속해서 모든 분들이 관심을 갖고 발전방안을 모색해 간다면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정리=서경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