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아열대화에 '외래해충' 늘어
해남 무화과 농가 '바구미' 기승
“매일 저녁 수십마리 잡아도 또 나와”
'옥수수 천적' 열대거세미나방 피해도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정목희 수습기자] “옆집은 수백 평을 싹 밀어버렸어요. 바구미 때문에 무화과 나무가 다 죽어서요. 매일 저녁마다 농민들이 나와서 나무에 붙은 바구미를 수십 마리씩 뗍니다. 그래도 다음날 또 나와요.” 전남 해남에서 무화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A(40)씨가 말했다. 바구미는 이곳 일대 무화과 재배 농가의 오랜 골칫거리다. 70여 농가 중 3곳이 이미 바구미 문제로 폐농했다.
아시아 아열대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무화과곰보바구미’가 해남 지역에 나타난 건 2020년 무렵. 묘목이 새싹을 틔우는 봄부터 겨울까지 활동하는 바구미는 잎사귀는 물론 나무 속, 뿌리, 과일까지 갉아먹어 피해가 막심하다. 이 벌레를 처음 확인한 홍기정 순천대 농생명과학과 교수는 “중국산 무화과 묘목 수입 과정에서 최소 2010년대 후반에 유입돼 국내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무화과를 재배하는 제주나 전남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전국 농가가 ‘외래해충(외국에서 유입된 해충)’ 비상에 걸렸다. 가장 큰 요인은 ‘온난화’다. 국내에 우연히 들어온 외래해충이 아열대화한 한반도 기후에 적응해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전남 지역 무화과, 옥수수 농가 피해는 이미 현실화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국내에서 외래해충 활동 규모가 더 커지는 것은 물론, 다른 종류가 더 유입될 가능성도 크다고 경고한다. 실제 무화과곰보바구미는 이미 국내 서식을 시작했으며, 옥수수를 갉아먹는 열대거세미나방 발견 시점은 매년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 유입되는 외래해충은 늘어나는 추세다. 29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견된 외래해충 종류 수는 2013~2017년 평균 354종, 2018~2022년 평균 414종으로 16.9% 증가했다. 홍 교수는 “과거 아시아 중심이던 교역국이 동남아시아·아프리카 지역으로 넓어지면서 아열대 해충이 들어오는 경로가 생기고, 동시에 한반도 기후는 더워졌으니 외래해충이 정착하기 쉬워진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옥수수 줄기와 잎을 갉아먹는 열대거세미나방은 2016년 처음 아프리카에서 발견돼 한국에선 3년 만인 2019년 제주에 처음 나타났다. 이후 전북, 전남 지역으로도 확산했다. 전남 광주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B씨는 “나방이 알을 까서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수확할 때에야 피해를 알 수 있는데, 수확해보면 한 자루에 30개씩은 벌레가 파먹은 상태일 때도 있다”고 했다.
열대거세미나방 역시 향후 피해가 커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김소라 전북대 식물방역학과 교수는 “지금까진 장마철 저기압을 타고 매년 새롭게 들어오고 있지만, 겨울 기후가 따뜻해져 앞으로 월동까지 하게 되면 전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전북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열대거세미나방은 이 지역에 지난해 7월 처음 나타났으나, 올해는 5월로 앞당겨졌다.
이렇듯 농가 피해가 크지만 일부 농가에선 대처조차 쉽지 않다. 해남 지역 무화과 농가의 경우 ‘친환경’을 내세워 농약을 쓰지 않아왔다. A씨는 “이제 와서 어떻게 농약을 써서 방제를 하겠느냐”며 “일일이 손으로 잡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전남 영암의 한 무화과 농장 관계자는 매일 2L 짜리 페트병에 가득 찰 정도로 바구미를 잡는다.
기온뿐 아니라 ‘태풍’ 역시 외래해충 유입 변수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로 태풍이 자주 발생하고 그 강도도 높아진 가운데, 이를 타고 먼 아열대 지역에서부터 해충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 홍 교수는 “온난화 속에 태풍도 더욱 강해지면서 바람을 타고 오는 외래해충 경로가 더욱 길어질 수 있다”며 “감귤 나무에 치명적인 황룡병 매개체 ‘아시아귤나무이’ 역시 아시아 아열대 지역과 아프리카에 주로 서식하는데, 국내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해충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k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