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19일 롯데콘서트홀서 브람스 음악 연주
샤니가 지휘하는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협연
위대한 음악 듣고 싶게하는 게 연주자의 몫
한때는 ‘콩쿠르 사냥꾼’이라 불렸다. 2010년 ‘센다이 국제 콩쿠르’를 시작으로 뮌헨 ARD, 하노버, 퀸 엘리자베스, 차이콥스키, 몬트리올, 비에냐프스키 콩쿠르까지.... 7년간 10개(한국대회 제외)의 국제대회에 나갔다. “세계무대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붙여진 별칭이다.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돌을 가리키는 바둑용어)’이었던 그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김봄소리에겐 ‘처음’을 되새기는 일이었다.
“이 별명을 들을 때면 그때의 간절하지만 무지했던 열정도 생각나고, 초심을 떠올리게 돼요.”
긴 시간을 지나온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혹독한 계절을 견디고 굳건히 뿌리 내려 꿋꿋하게 딛고 선 ‘인고의 소리’를 품었다.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최초로 세계적인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계약을 했고, 세계 유수 악단의 러브콜을 받는다. 오는 7월엔 BBC 프롬스 데뷔무대를 갖는다. 이젠 이름만으로 존재감이 있는 음악가가 됐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4)를 서면으로 만나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브람스’다. 김봄소리가 2013년 ARD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한 이후 꾸준히 들려주는 곡이다.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지휘자 라하브 샤니가 이끄는 로테르담 필하모닉오케스트라(6월 19일·롯데콘서트홀)와 함께다.
“당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가들이 들려준 브람스 협주곡은 제게 큰 충격이었어요. 브람스의 구조적인 음악을 어떤 사운드와 방식으로 연주하는지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됐어요.”
10년 전과 지금의 김봄소리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듯, 그때의 연주와 지금의 연주는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한해 한해 쌓아온 ‘음악적 경험’은 ‘심오하고 깊은’ 브람스의 세계로 더 가까이 다가서게 했다.
김봄소리에게 음악은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다.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잡은 이후 음악과 마주할 때마다 내면의 자신을 꺼내봤다. 중학생 때부턴 ‘음악일기’를 써왔다. “그때의 습관”이 이어져 지금도 놓지 않는 일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데에 매일 조금씩 시간을 할애한다는 생각으로 노트를 쓰는데 기록들을 남기다 보면 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세상과 음악을 이해하는 관점이 어떻게 얼마나 변화해왔는지를 보는 게 흥미로워요.”
음악과 함께 김봄소리와 오랜 시간 동행한 친구는 ‘바둑’이다. 여덟 살 때부터 기원을 “밥 먹듯이 드나들었다”. “연습도 안 하고 바둑만 두던” 때라고 한다. 그는 “그때는 급수를 올리기 위해 열을 내며 바둑을 뒀고, 바둑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돌아봤다. 승패가 분명한 세계는 ‘음악’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김봄소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서울대 재학 시절엔 바둑동아리에 들었고, 2년 연속 도쿄대와의 교류전에 출전했다.
“일본에서 연주로도 데뷔하기 전이었으니 정말 재밌는 일이죠. 바둑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임이라 요즘은 거의 두지는 못해요. 가끔 선수들의 기보를 보거나 심심풀이로 문제를 풀기는 하는데 솔직히 기력이 거의 다 죽은 것 같아요.”
김봄소리가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이창호다. “전성기 시절 보여준 무겁고 끈질긴 스타일의 기풍을 좋아한다”고 했다.
“대국의 중반까지 상대에게 유리한 바둑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다가 끊임없는 계가와 수읽기로 끝내기에서 치열하게 반집승을 해내는, 사나워 보이지 않지만 고요하게 진짜 무서운 바둑을 보여줘요.”
김봄소리는 바둑을 통해 음악과 삶을 배웠다. 그에게 바둑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연마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창호 기사에 대해 “대마를 잡아 크게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그것을 놓아둔다”며 “가장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자기만의 페이스로 끌고 가는, 묵묵하고 단단한 그의 바둑에서 성품과 삶에 대한 태도까지 참 배울 게 많다”고 했다.
김봄소리가 걸어온 ‘음악의 길’도 마찬가지다. 무수히 많은 콩쿠르에 나갔지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건 한 번(2011년 제3회 중국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뿐이다. 지치지 않고 걸어온 길 위에서 그는 담대했다.
“바둑 한 판을 보면 바둑을 두는 기사의 기풍과 성격,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고 해요.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작곡가의 작품이나 연주자의 음반을 들으면 그 작곡가와 연주자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요. 달리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음악 안에서 절대로 숨기거나 위장할 수 없죠. 바둑과 음악, 둘 다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음악을 하고 바둑을 두면서 이전엔 소설가를 꿈 꿨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읽고 싶고 여러 번 읽어도 여운을 남기는 글을 쓰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경탄한다. 음악도 다르지 않다.
“연주를 하고 또 해도 여운과 감동이 새롭게 다가오는 음악이 위대한 음악이고, 그런 음악들이 오랜 시간 살아남아 현대의 우리에게 울림을 줘요. 이 위대한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드는 것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연주자 몫이거든요.”
김봄소리가 걷는 음악가의 길엔 “음악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따라온다.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예술가로의 자질’을 묻곤 했다. 지금도 김봄소리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소소함이 주는 기쁨과 영감이 큰 위로와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커진다”며 “음악을 하면서 제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치와 역할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김봄소리의 음악이 그의 이름처럼 온기를 품은 이유다.
“봄의 소리는 고통스러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당당하면서도 힘차고 희망에 가득 찬 소리라고 생각해요. 희망이라는 말에는 순수성도 가득 담겨 있죠. 제가 추구하는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봄의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