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감독

동일본대지진 일본인 아직도 상처

끝나지 않은 ‘재난 트라우마’ 고려

영화 주요 무대·여행지 모두 가공

일본 애니 쇠락? IP로 빠르게 확장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 [서병기 선임기자]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 [서병기 선임기자]

올 들어 일본 대중문화가 살아나고 있다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 진원지는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꿈과 열정을 그린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55만 관객을 동원했고, 지난 3월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4월 28일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중 최초로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위드 코로나’에도 극장가에 관객을 다시 불러오기 힘든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같은 흥행은 매우 유의미한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新海誠·50)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지난 3월 첫 방한 당시 했던 ‘300만 관객 돌파 공약’을 지키려고 불과 한 달 반만에 다시 온 것이다.

주오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애니메이션 ‘둘러싸인 세계’ 연출로 데뷔한 신카이 감독은 ‘너의 이름은.’(2016)과 ‘날씨의 아이’(2019)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2022)까지 ‘재난 3부작’을 완성했다. 이중 ‘스즈메’는 일본에서만 1000만 이상을 동원했고, 한국에서도 500만에 가까운 관객들이 보며 탄탄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하라 나노카)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들을 막기 위해 신비로운 청년 ‘소타’(마츠무라 호쿠토)와 함께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스즈메의 문단속’ 포스터

신카이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의 한국 인기에 대해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그는 “‘스즈메’는 12년 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배경인데다 친절한 작품도 아니어서 처음엔 과연 한국 관객이 많이 봐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일본적인 이야기에 한국 관객이 열광하는 현상을 바라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의 올해로 두 번째 한국 방문은 친구 집 놀러가듯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신카이 감독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오던 지난 20년 간 한일관계는 좋은 적도 있었지만, 나쁜 적도 있었다”며 “양국 관계와 상관없이 한국 관객들과 꾸준히 커뮤니케이션을 해온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작품의 흥행 여부가 일본 것이라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국가 간 문화 콘텐츠를 접하는 경계가 무너졌고, 특히 젊은 관객들은 국가간 문화 저항감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말했다. 즉 일본인들이 K-드라마와 K-팝에 열광하듯 한국 관객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스즈메’의 배경이 되는 동일본 대지진은 아직도 일본인들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신카이 감독은 10년 이상이 된 지금이라면 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하리라 봤다.

그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수 천명”이라며 “현 상황을 고려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우선 지진이나 쓰나미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고, 죽은 사람들과 재회하는 이야기는 에피소드에서 제외했다. 영화 상영 전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주의하라’는 경고 문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은 항상 관객들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찾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즈메’에서는 관객들이 가볼만 한 곳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즈메의 마을은 가공으로 만들었다”며 웃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늘상 방문객들이 급증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아서다.

설정도 스즈메가 한 지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규슈(九州) 끝에서 출발해 도호쿠로 전국 여행을 다니며 재난을 막는 콘셉트로 했다. 스즈메가 여행을 하면서 들리는 곳은 시코쿠(四 )의 에히메현(대홍수), 고베(한신 아와지 대지진) 등 과거 재해가 발생했던 지역이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활약하던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비해 내리막길을 걷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내리막길로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화를 기반으로 한 IP(지식 재산권)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으로 더욱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것. 그는 이같은 성과는 제작과 배급에서 십 수년에 쌓인 노력의 결실이라고 봤다.

신카이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한장한장 손그림으로 그린다”며 “시대에 뒤떨어지고, 이같은 작업을 업데이트하는 것은 일본의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같은 직업 과정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신카이 감독은 간담회 후 곧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러 온 한국 관객들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외국 말로 된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거듭 인사했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