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합창단 2023 ‘마스터 시리즈’
美 최고의 합창 지휘자 안드레 토마스
흑인 작곡가들의 합창곡으로만 구성
흑인 노예의 역사 담은 ‘흑인 영가’
종교로 출발, 나의 이야기와 영혼 담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깊고 거대한 울림이 차오른다. 고통과 탄식, 수천 겹의 인내를 담은 기도가 시작된다. 나직하게 뱉어내는 한 줄 한 줄의 음악은 그들의 삶에 대한 증언이다.
“흑인 노예들이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 줄로 서서 걸어갑니다. 사람들의 다리는 쇠사슬로 묶여 이어져 있어요. 그리고 노래를 불러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노래는 연기가 피어오르듯 가득찹니다.”
미국 최고의 합창 지휘자로 꼽히는 안드레 토마스는 ‘킵 유어 램프(Keep your lamps)’의 유래를 설명하며 “‘흑인 영가’는 흑인을 더 흑인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 곡은 당시 흑인노예들의 삶을 어두운 단조로 표현, 그들의 지나온 삶과 지금의 역사를 담아냈다.
안드레 토마스는 13~14일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흑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만나는 미국 현대 합창’ 공연을 앞두고 가진 세미나(‘흑인영가의 이해와 연주법’)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 미리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선 흑인영가의 역사를 듣고, 함께 노래하며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한 민족, 한 지역(나라)의 음악엔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다. 흑인 영가(Negro Spritual)는 17세기부터 1860년대까지 흑인들의 노동요에서 기원한다.
흑인 영가와 기독교는 떼놓을 수 없다. 흑인영가를 ‘아메리카 흑인의 그리스도교 음악’을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안드레 토마스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을 다루기 위해 주인들은 종교(그리스도교)를 줬다”고 말했다. 아메리카 흑인에게 그리스도교가 보급된 것은 노예제 말기인 18세기 후반부터다. 초기엔 흑인에게 그리스도교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백인들의 사고방식도 있었으나 이후 노예 소유자들은 이들을 ‘잘 다루기’ 위해 종교를 장려했다.
이런 배경을 안고 태어난 것이 ‘흑인 영가’다. 이 안엔 흑인 노예들의 고난의 삶과 고향으로의 귀환을 향한 꿈이 담겨있다. 안드레 토마스는 “흑인 영가는 민속음악과 같아 작곡가가 누구인지 모르나, 노예제도 이후 등장한 음악만 작곡자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흑인영가는 종교와 함께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안드레 토마스는 “성경의 인물들을 노래한 종교적 음악(가스펠)과 개인적 감정을 담은 비종교적 음악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적 음악이든, 비종교적 음악이든 ‘흑인영가’는 노예제 폐지 이후 모두 ‘나의 이야기’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흑인교회를 거점으로 독자적인 종교음악의 발전을 이어갔고, 가스펠은 이후 알앤비 장르 등 솔 음악의 뿌리가 됐다.
‘흑인 영가’엔 아메리카 흑인들의 역사와 이들 고유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노래할 때 “발음의 전환과 음절의 생략”이 일어난다는 것이 토마스의 설명이다. th 발음은 d로 바뀌고, r 발음은 생략된다. 안드레 토마스는 “th 발음은 아프리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발음이라, 아메리카 흑인들은 이 발음을 할 수 없었다”며 “th 대신 d로 약하게 발음하고, r 사운드를 없애게 됐다”고 말했다.
안드레 토마스는 서울시합창단의 ‘마스터 시리즈’를 통해 객원지휘자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공연은 흑인 작곡가들의 합창곡으로만 구성했다. 1부에선 전통적인 서양 음악 언어를 사용한 흑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만날 수 있고, 2부에선 흑인영가와 가스펠을 통해 영혼을 울리는 흑인 음악에 듣게 된다.
박종원 서울시합창단 단장은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합창음악은 다양한 음악적 흐름을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엄청난 다양성을 만날 수 있는 흑인 작곡가들의 합창곡을 통해 미국 합창 음악에 담긴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해보고자 했다”며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다양성을 담은 음악을 통해 조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흑인 작곡가들의 곡으로만 구성한 합창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드레 토마스는 “한국인들과 나의 조상들의 음악을 나누기를 원한다”며 “이 음악은 모두를 위한 음악이고, 의미를 이해하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며 관객과의 만남을 고대했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