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고문실태 보고서 공개 이후…“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것” 평가 “잔혹하고 효과적이지 못한 고문”…상원 ‘CIA 거짓·축소 보고’ 질타 “슈퍼파워 美 깨끗하지 않으면 다른나라 인권 비난할 수 없다” 주요 서방언론, 美 결단에 박수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단점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미국이 9일(현지시간) 만천하에 공개한 ‘부끄러운 자화상’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린 평가다.
▶오바마 “과거 직시하는 것이 미국의 힘”= 미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9ㆍ11테러 직후부터 2008년까지 유럽과 아시아의 비밀 수감소에서 테러 용의자를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한 실태 보고서의 요약본이 공개되며 전세계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 이슬람 무장세력의 반인륜적 범죄를 처단하고자 국제사회 힘을 결집시키고 있는 미국이 실상 자신도 국익이란 명분 아래 여러 잔인한 방식으로 인권 침해를 벌여 온 위선이 발가벗겨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 미국의 최고 덕목에 흠집이 불가피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이번 보고서 공개가 해묵은 논쟁을 재점화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이번 사안은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며, 미국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강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CIA의 고문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며 미국의 위상에도 타격을 줬다고도 했다.
그는 특히 “이런 가혹한 고문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에 중대한 타격을 주고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면서 “앞으로는 절대 이런 방법(고문)에 의지하지 않도록 내 권한을 계속 행사하려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언론, 미국의 결단에 박수=오바마 대통령의 ‘고해성사’와 같은 이같은 결단에 주요 서방 언론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국외 시설 및 기지에 대한 테러 위협 증가, 민주인권 국가로 알려졌던 미국의 위상 추락, 중국과 북한의 대대적인 역공 등 CIA 고문보고서가 몰고 올 각종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솔직하게 ’어두운 과거‘를 자백했기 때문이다.
독일 공영방송 DW는 논평에서 “글로벌 슈퍼파워 미국이 스스로 깨끗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인권을 비난할 수는 없다”며 “부시 정부 시절 CIA의 도넘는 행동에 의해 잃어버린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을 인식하고 책임을 받아들어야한다”고 했다.
DW는 또 보고서 공개로 해외 거주 미국인의 안전과 미국 외교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공화당 등 일각의 비판에 대해 “완전 잘못된 판단이다. 오히려 미국 외교정책을 회복시켜줄 것이다”고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보고서 공개는 국가의 책임에 관한 지표”라고 호평하면서도 “이제 의문은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 것이냐다. 미국은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확연히 다른’ 역사관에 주목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국내 정치에 얽매여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등 역사적 사실을 계속 왜곡하고 있는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의 치부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개선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CIA의 ‘선진 심문’ 충격=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이 공개한 CIA 고문실태 보고서에는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각종 고문 행위가 적시됐다.
비밀 감옥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에게 180시간째 잠을 재우지 않고, 183회의 워터보딩(물고문)을 가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총 6000여쪽에, 요약본 500쪽 분량의 보고서의 결론은 “고문은 잔혹했으며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9일 요약본 내용을 공개하면서 “CIA가 잘못된 보고로 미 의회와 정부, 국민을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CIA는 ‘선진 심문 프로그램’이란 이름으로 자행한 고문에 대해 거짓 보고를 일삼았다. 비밀 수감소에 수감인원은 총 119명인데 98명으로 축소 보고했다.
2006년 한 수감자에게 쇠사슬로 묶어두고 기저귀를 채워 용변을 보게 하는 등의 처우를 하고선, 부시 대통령에게는 ‘불편함을 호소했다’ 정도로만 보고했다.
또 수감자 119명 가운데 최소 26명은 잘못 잡혀들어왔다. 물고문, 잠재우지 않기, 얼음방 수감 등 ‘선진 심문’을 받은 수감자는 모두 39명이다.
이 중 이같은 고문을 받고도 CIA에게 어떤 정보도 건네지 않은 이가 7명이다. 음식과 물 섭취를 거부해 CIA가 직장으로 물을 집어넣은 이가 5명이다. 구금자 최소 1명이 모의 처형으로 협박받았고,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는 5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다.
물고문의 일종인 ‘워터보딩(상대를 눞혀 얼굴에 물을 붓는 행위)’을 받은 구금자는 3명이며, 이 중 183회의 ‘워터보딩’을 받은 이도 있었다.
119명 가운데 1년 이상 넘게 구금돼 있던 용의자가 47명이며, 관타나모 수용소에 아직도 15명이 수감돼 있다.
NBC는 CIA가 이런 ‘선진 심문 프로그램’ 개발에 모두 8000만달러(884억원)를 썼다고 보도했다.
계약 상대방인 워싱턴주 스포케인에 있는 ‘미첼, 제슨 앤 어소시에이츠’의 제임스 미첼 심리학 박사는 ‘SERE(Survivalㆍ생존, Evasionㆍ도피, Resistanceㆍ저항, Escapeㆍ탈출)’이란 이름의 고문을 견디는 방법 개발자로, CIA와 협력해 20가지 고문 기술을 개발했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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