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생기면 ‘낙타 먼저’였던 과거…이제는 가축 따로, 사람 따로

사막 한가운데 태양열 집열판…탱크에 모인 물 마을로 향해

물 찾아 떠난 아이들이 학교로…텃밭도 생겨 ‘식량안보’ 도움

코로나19 예방에도 역할…“5세 이하 설사병 발병률 5% 이하로”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의 소펠마을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이 물은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가 협업해 개발한 태양열 지하수 관정에서 나온 것이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의 소펠마을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이 물은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가 협업해 개발한 태양열 지하수 관정에서 나온 것이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케냐 투르카나)=외교부 공동취재단·최은지 기자] “급수시설이 들어온 전후로 아이들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물을 긷기 위해 매일 20㎞를 걸어 다니곤 했는데, 이젠 물을 집 바로 옆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州)의 주도 로드워에서 비포장도로를 45㎞, 약 1시간 달려 도착한 소펠마을(Sopel Village)에서 에칼 에라투스마을 사회봉사자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광 집열판 아래에 생긴 그늘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주민과 콸콸 쏟아지는 물을 노란통에 받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비록 옷은 다 해졌지만 깨끗한 물을 받아 마시는 아이들의 표정이 한껏 신이 나 있다. 주민 식수용 시설과 별도로 마련된 가축용 급수시설에서는 소들이 여유롭게 목을 축이고 있었다. 물이 있으면 가축을 먼저 먹여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무척 고무적이다.

박미 코이카 케냐사무소 부소장은 “과거에는 물이 생기면 낙타가 가장 먼저 마시고 그다음엔 염소, 마지막으로 사람이 마셨는데, 이제는 낙타와 염소, 사람이 동시에 물을 마실 수 있어서 마을 주민들이 기쁘다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의 소펠마을에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 간 협업으로 설치된 태양광 시설. 태양광 집열판과 관정 등을 상공에서 촬영한 모습.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의 소펠마을에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 간 협업으로 설치된 태양광 시설. 태양광 집열판과 관정 등을 상공에서 촬영한 모습.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취재진이 방문한 소펠마을은 사막 기후에 적합한 태양광 급수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이전에 설치한 핸드펌프는 시설 관리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바짝 마른 어린아이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다.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해 확보한 전기에너지로 45m의 깊이에 설치된 관정 펌프에서 끌어 올린 물을 마을보다 높은 언덕에 설치된 물탱크로 보낸다. 물탱크에 모인 물은 중력을 이용해 파이프로 내려간다.

시간당 5.2㎥ 분량의 지하수는 10㎥ 규모의 저수조 2기와 공용 급수대, 가축 수조로 보내 마을과 보건소, 학교로 보내져 5400여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

소펠마을에 사는 열세 살 도르카스 로카펫은 “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10여㎞를 걸어가서 물을 가져와야 했는데 이제는 (집 근처에도) 물이 있으니 수저도 씻을 수 있어 좋다”며 감사를 표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州)의 칼로피리아마을에서 염소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이 물은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가 협업해 개발한 태양열 지하수 관정에서 나온 것이다. 사진 뒤쪽으로 태양광 펌프로 퍼 올린 물을 모아 마을 곳곳으로 보내는 물탱크가 보인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지난 7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州)의 칼로피리아마을에서 염소들이 물을 마시고 있다. 이 물은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가 협업해 개발한 태양열 지하수 관정에서 나온 것이다. 사진 뒤쪽으로 태양광 펌프로 퍼 올린 물을 모아 마을 곳곳으로 보내는 물탱크가 보인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설사병 발병률 25%에서 5% 이하로…코로나19도 극복”

태양광 급수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만큼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가정당 매월 100케냐실링(약 1달러)의 요금으로 유지 보수와 수리 비용을 내고 있다. 태양광 급수 시스템은 투르카나주 지역의 수자원 거버넌스인 수자원이용자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펌프에는 작동 이상 유무를 체크할 수 있는 센서가 달려있고, 정상 작동 여부는 수신기를 통해 주 정부 수자원국에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이상이 생기면 바로 수리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마을 보건소 역시 태양광 급수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손 씻기가 가장 중요한 만큼 급수 시설이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대니얼 이렝 보건소 간호사는 “물이 들어온 다음에 5세 이하 아동들의 설사병 발병률이 기존 20~25%에서 5% 이하로 확 줄었다”며 “수인성 질병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州)의 칼로피리아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들. 태양광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급수시설 덕분에 학생들의 출석률도 높아졌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지난 7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州)의 칼로피리아 마을의 초등학교 학생들. 태양광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급수시설 덕분에 학생들의 출석률도 높아졌다. [케냐=외교부 공동취재단]

물 있는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 “등교율과 수업참여율 높아져”

7일(현지시간) 찾은 칼로피리아마을(Kalopiria Village)은 로드워에서 약 55km 떨어진 지역이다. 이곳에는 올해 태양광 급수 시설이 들어섰다. 87m를 시추해 52m 깊이에 태양광 펌프(SP5A-25)를 설치, 시간당 6㎥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10㎥ 용량의 물탱크 2대가 파이프를 이용해 마을과 학교로 물을 보내고 있다. 수도관은 마을 주민이 동원돼 약 70㎝의 땅을 파고 매립했다.

칼로피리아 마을주민은 가뭄으로 숫자가 줄었다가 태양광 급수 시설로 안정적으로 물이 공급되면서 다시 늘고 있다. 이 지역 시설은 칼로피리아뿐만 아니라 로통고리, 칼로케메르 등 인근 6개 마을 1369명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3㎞ 떨어진 마을에서 물을 긷기 위해 이곳으로 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것은 더 이상 물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면서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태양광 급수 시스템은 대부분 초등학교와 연결돼 있다. 소펠 초등학교에는 학생 315명(남165명·여150명)이 등교하고 있고, 칼로피리아 초등학교에는 357명의 학생(남 327명·여 330명)이 재학 중이다. 학교 옆에서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게 되면서 아이들 급식 식자재로도 활용하고 있다.

에무론 실비아 칼로피리아초등학교 교장은 “학교에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물을 길어오기 위해 매일 2~4시간씩 걸어 다녔고, 길이 험해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며 “처음 화장실을 사용하길 두려워했던 아이들이 완전히 익숙해져 ‘학교에 화장실이 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식수위생은 주민의 건강과 영양상태, 교육과 생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원활한 물 공급으로 소규모 텃밭 작물을 키우면서 식량안보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마을 주요 생계수단인 목축업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잭슨 무티아 유니세프 로드워 지역사무소 식수위생전문가는 “지금까지 19개 초등학교와 유치원, 중학교 2곳이 급수 시스템과 연계돼 있다”며 “이로 인해 투르카나 지역에서 7000명이 넘는 학생이 도움받고 있고, 등교율과 수업 참여율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silverpap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