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심한 강을 떠내려갈 때/더 이상 사공에게 조종됨을 느끼지 못했네(…)나는 별들의 군도를 보아왔다!/그리고 섬들/미쳐 날뛰는 하늘은 뱃사람을 위해 열려 있었다./헤아릴 수 없는 밤에 추방당한 너는,/수백만의 금빛 새들과, 오 인생은 미래의 힘으로서 나를 뒤덮건만 너는 잠들 수 있는가?’
잘 알려진 천재 시인 랭보의 ‘취한 배’이다. 16살 때 쓴 100행 짜리 시다. 중학생 랭보는 1871년 여름에 이 시를 썼다. 몇 번의 가출을 감행했던 그 여름, 랭보는 폴 베를렌을 비롯한 유명 시인 몇몇에게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유명한 ‘견자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저울질 하는 사이, 베를렌이 이를 덥석 물었다. 그는 예술가적 직감으로 알아봤다. 위대한 시인의 탄생을. 그리고 랭보에게 서둘러 답장을 쓴다. ‘위대한 영혼이여 내게 오소서 이는 운명의 부르심이니’. 랭보는 그 길로 파리로 향한다.
당시 파리 동부역에 나타난 랭보는 아주 짧은 바지와 파란색 면양말을 신은 모습이다. 반바지 주머니에는 바로 ‘취한 배’가 들어있었다.
폴 베를렌과 랭보는 즉각 자신들이 원하는 걸 상대방에게서 발견하고 빠져들었다. 베를렌은 시적 영감을, 랭보는 그가 동경했던 세상을 밝히 보는 견자의 모습을. 그리고 동부역에서 만난 지 며칠 만에 둘은 서로를 탐닉하게 된다.
천재 시인 랭보에 대한 콘텐츠는 이제 차고 넘친다. 숱한 전기와 영화, 뮤지컬까지 자유롭고 매력적인, 영원히 죽지 않는 소년성을 지닌 랭보를 우리는 도처에서 소비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랭보 전기를 쓰겠다면 필살기가 필요하다.
피에르 미숑은 ‘아들 랭보’(민음사)에서 그걸 해냈다. 삐에르 쁘띠피스의 랭보 전기가 정확성을 추구한다면, 피에르 미숑은 전기적 소설 형식을 택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과는 판이하다. 운율과 은유, 상징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서사시에 가깝다.
미숑은 운명처럼 만난 베를렌과 랭보가 시를 잃고 ‘부레 춤’을 췄다고 전한다.
“덧창이 닫힌 방 안에서 두 나체는 발을 구르고 과거의 부레 춤을 추며 서로의 ‘보랏빛 패랭이꽃’을 찾았다.그리고 패랭이꽃에 자신을 묶어 맸다. 12음절 봉이 아닌 돛대에 매달린 두 사람은 전율을 느끼고, 그 순간 이 세상에서, 이 어둑한 방에서, 9월의 닫힌 덧창으로부터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육신이 우주로 퍼져 나갔다. 눈은 생기를 잃고 언어 역시 사라졌다.”
베를렌과 랭보는 모든 가능성을 실험하고 연인, 동지, 시인 등 여러 역할을 이어갔지만 실상을 알게 된 베를렌의 아내로부터 추방된다. 브뤼셀, 런던 등지를 전전하며 독한 술에 빠져 점점 더 탐욕과 타락의 진창에 곤두박질 친 둘은 청어를 두고 다툰 뒤 베를렌이 랭보에게 6연발 권총을 쏴 박살난다.
미숑은 랭보의 시적 감수성의 뿌리에 주목한다.
6살에 집을 나간 유령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지며 엄격했던 어머니는 랭보를 옭아맨 그물이었고 랭보는 그 깊은 우물에서 빠져나오고자 발버둥쳤다. 세상의 든든한 기반인 아버지의 부재, 살가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부유하는 삶은 폴 베를렌이라는 기둥을 만나면서 비로소 붙들린다. 랭보는 베를렌의 모든 것을 통과하며 시 자체인 삶을 추구했지만 이내 그에게서 유령 아버지의 환영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절필을 선언한 랭보는 아프리카로 떠나 상인이 된다. 그는 걷고 또 걸으며 물건을 팔고 자신이 탐험한 곳에 대한 얘기를 전하지만 거기에 시는 없다. 랭보는 다리에 퍼진 암이 전신에 퍼져 다리를 절단하게 되고 1891년 죽음을 맞는다. 37살이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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