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대회가 끝나진 않았지만 이번 ‘2023 카타르월드컵’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국가는 바로 모로코라 단언할 만하다. 피파(FIFA) 월드 랭킹 22위인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가 벨기에(피파 랭킹 2위), 스페인(7위), 포르투갈(9위) 등 쟁쟁한 유럽 축구 강호들을 줄줄이 대파할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느껴질 정도로 통쾌했다. 만약 우승국과 별도로 개인 외에 국가 수상을 새롭게 만든다면 모로코가 받아도 이견이 없을 정도다.
모로코 축구의 돌풍은 ‘변방의 국가’ 모로코의 역사를 좀 알거나 상대국과의 관계를 조금만 파악해도 이 현상이 왜 대단한지, 이들의 경기가 왜 뭉클할 수 밖에 없는지 가늠할 수 있다.
모로코가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만난 벨기에는 100년 전 모로코 사람들이 광산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떠났던 나라다. 모로코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이곳으로 갔지만 오랜 기간 냉대와 차별을 받는 수모를 경험하게 됐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모로코와 수백년간 긴장과 갈등의 역사를 쓴 나라들이다. 특히 스페인은 영토를 서로 뺏고 뺏기다가 일부는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4강에서 만난 프랑스 역시 모로코를 식민 지배했던 국가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일본 팀을 만나면 전의가 불타오르듯 모로코 대표팀은 유럽 축구강국들을 상대할 때마다 우리가 한일전을 치르는 것처럼 번번이 치열했을 수 있다.
‘유럽 역사의 주변인’으로 모로코의 역사는 시련 그 자체였지만 모로코 축구팀의 전력으로만 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고된 역사로 인해 많은 국민이 해외 도처로 흩어지다 보니 축구에 재능 있는 ‘모로코 슛돌이’들이 해외에서 선진축구를 경험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다.
실제로 모로코 축구대표팀 26명 중 14명이 모로코가 아닌 나라의 이민자가정에서 태어났다. 골키퍼 부누는 캐나다에서, 나머지 13명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에서 나고 자랐다. 여기에 자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단 3명뿐. 나머지 20명은 유럽리그, 그 나머지 3명 마저도 중동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타국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해당 국가의 대표팀에 합류가 어려워 이중 국적을 버리고 자국 대표팀에서 뛰는 다른 아프리카나 아시아권 선수들과 차원이 다르다. 우스갯소리로 모로코는 벤치 지키는 선수도 유럽 빅리그 명문 구단 출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부모의 나라에서 조국의 설욕전을 훌륭히 수행한 모로코팀을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도 그들과 같은 기적이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주거사다리’가 사라지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게 없으면 중산층 이상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이어진다고 해도 ‘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간 계속되는’ 그래서 랭킹 22위가 2위를 이겨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축구처럼 꿈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가진 것 없는 서민이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노력한 만큼 대우받는, 이른바 ‘역전골’을 넣는 짜릿한 상상을 해본다. 모로코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듯 환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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