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예술경영인ㆍ천생 극장인
40년 가까이 공연예술 두루 섭렵
예술의전당부터 세종문화회관까지
“관객이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동력”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저는 늘 극장에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이에요. 내가 저기에서 일한다면 어떨까, 저 극장을 경영하는 사람의 고뇌는 뭘까, 이 극장만의 장점과 기회는 뭘까 생각하며 극장을 보게 되더라고요.”
1세대 예술경영인.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에겐 ‘극장인’이자 ‘극장 전문가’라는 수사가 늘상 따라온다. 1984년 막 개관한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한 이후 38년간 공연예술계에서 한 길을 걸었다.
“그땐 예술적 사명감이 있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예술의전당에 처음 입사해 5~10년 가까이는 그만둬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웃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죠. 1988년에 음악당이 개관하고 공연을 하는데, 저녁마다 관객은 반밖에 안 차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공사 중인 오페라극장 2300석, 토월극장, 자유소극장까지 관객을 채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안 사장은 우스갯소리로 “지금 떠나면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한 것 같은 죄책감”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1994~1998년까지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으로 있을 때는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어요. (웃음) 그러다 외환위기를 지나며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다국적 기업이 들어와 투자가 이어지고, 관객들의 공연예술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도전이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지금도 회자되는 두 개의 공연은 1999년에 나왔다. 모두가 만류한 작곡가 말러 시리즈와 가왕 조용필의 공연이 ‘밀레니엄 시리즈’ 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대중가수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세운 최초의 시도는 ‘전석 매진’ 신화를 달성했다.
“영국에서 엘튼 존이 다이애나 왕세자비 장례식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대중에게 무료나 초대 관객이 아닌 유료 관객 기반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이를 위해 조용필의 공연, 뮤지컬, 악극 장르로 확장했고 그러면서도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거죠.”
40년 가까이 극장은 그의 무대였고 일터였다. 새로운 길을 갈 때마다 굵직한 걸음을 남겼다. 국립극장장 시절 도입한 시즌제는 트렌드를 넘어 현재 공연예술계에 당연히 자리한 ‘상식’이 됐다. 이정표를 제시하는 선구자이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이지만, 스스로는 “도전을 위한 도전”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때마다 하고 싶은 것을 해온 것”이라고 한다.
“예술의 가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예술은 늘 공급이 먼저인 장르예요. 공급이 있으면 수요가 따라오죠. 새로운 도전으로 남들이 만들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은 예술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권이기도 해요.”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무대에 올린 총체극 ‘영고’는 안 사장의 뼈아픈 실패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공연예술계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실수와 실패는 모두 다 경험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결정적 공연’의 순간마다 안 사장은 이 작품을 반면교사 삼는다. 2000년에 접어들면 손을 대는 작품마다 성공했다. 그는 “하는 것마다 터지니 그 땐 신들린 줄 알았다”며 웃었다.
“세상이 바뀐 거였어요. 관객이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고, 관객들이 원하는 수준의 공연을 공급했던 거죠. 그 때의 전 제가 잘해서 생긴 결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새로운 선택을 할 때마다, 관객이 그 자리에 먼저 가 있었어요.”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의 원천은 ‘관객’이었다. 안 사장은 “관객은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다”며 “진정성 있는 시도를 하면 관객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취임 이후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을 천명하며 가장 중요하게 담아낸 가치 역시 ‘동시대성’이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지금 관객의 요구를 담은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시대를 놓치거나 시대를 잘못 짚으면 관객은 배신하겠죠. 사실 늘 조마조마해요. 지금도 공연할 땐 언제나 두려워요. 아마도 공연을 앞두고 제일 긴장하는 사람이 저일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극장에 가면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두려운 마음으로 공연을 지켜보니 관객들의 반응이 잊히지 않아요. 관객이 변화를 만들고 새로움을 시도하게 하는 동력이에요.”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