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고성서 삼척까지 ‘낭만가도’ 밀려가는 파도에 시름 씻어내고 군청색 서정 품고 즐기는 회맛 일품

황홀한 일출 감상하려면 동해·양양 해변운치 느끼고 싶다면 양양 솔비치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애틋한 서정의 시인 김남조는 겨울바다의 ‘치명적’인 정서를 노래한다.

‘착한 남자’인줄 알았던 강마루가 새 엄마 한채희의 옛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서은기는 치명적인 절망에 빠진다. 절망의 장소는 다름 아닌, 강마루와 서은기가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동해(추암) 바다였다.

겨울바다는 ‘치명적’이기에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예고한다. 김남조는 기도한 뒤 다시 겨울바다를 찾는다.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강마루와 서은기도 두터운 인고를 바닷물보다 깊은 기억의 뒷편에 모두 묻고 동피랑 해변에서 사랑을 완성한다.

바다는 여름의 것이 아니라 겨울의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바다는 거센 파도에 내 마음을 한없이 내동댕이 쳤다가 가장 아름답게 곧추세우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강원도 동해안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의 겨울해변은 ‘낭만가도’로 이름 붙여져 있다. 쏟아지는 해변의 겨울 낭만은 여름에 비할 바 아니다.

낭만가도를 북에서 남으로 달리면 거센파도에 패여 만들어진 사주가 끝내 물을 가두어 만든 석호(潟湖, lagoon)를 자주 만난다.

‘코리아 라군’은 완만한 지형에 오랜 기간 퇴적과정을 거쳤기에, 절벽들로 둘러쳐진 블룩쉴즈의 자메이카 ‘블루라군’이나 말레이시아 랑카위의 라군과는 색다른 정감을 준다. 고성 화진포, 송지호, 속호 영랑호를 지나 속초 해변에 이르면 한창 도루묵과 양미리가 제 철이다. 아련한 겨울바다의 군청색 서정을 감상하면서도, 박자 맞춰 그물을 끌어올리고 경매에 부치는 바닷가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도 보고, 막 잡은 어류를 즉석에서 구워먹고 회쳐먹는 체험까지 할 수 있다.

양양의 하조대는 동해시 추암해변과 함께 ‘애국가’의 단골 배경화면에 등장하는 곳이다. 동해와 양양 모두 ‘해오름의 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두 곳의 일출이 동해안 최고이기 때문이다. 해뜨기전 출어한 배가 미끼를 던지자 먼저 덤비는 건 갈매기이다. 아침 출어한 배 주변엔 늘 갈매기떼가 천하장사 우승때 오색 종이 휘날리듯 몰려든다.

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권이 잠시 머무른 동네라서 두 사람의 이름을 따 하조대로 이름 붙였다고는 하지만, 이런 권력지향적인 명칭보다는 앙숙이었던 하씨네 총각과 조씨네 처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 더 정감이 간다.

하조대에서 7~11㎞ 남쪽으로 내려가면 각각 죽도해변, 휴휴암, 남애항을 만날 수 있다. 봉긋 솟아오른 죽도정 언덕 북쪽의 죽도해변 방파제는 바다새의 안식처이다. 겨울 세찬 바람을 뚫고 힘겨운 나래짓을 마친뒤 바위와 방파제에 모여든 평온한 바다새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죽도정 남쪽 휴휴암 해변에는 바닷물 위의 자연석이 누워있는 부처님 모습을 닮은 ‘누워부처’가 있다. 남애항은 스킨스쿠버들의 천국, 하조대 북쪽 수산항은 요트맨들의 집결지일 정도로 양양에는 해양레포츠 인프라도 풍부하다.

줄곳 바다와 함께 달리던 7번국도는 동해안에서 회가 가장 맛있다는 강릉 안목항부터 남강릉 옥계까지 바다와 헤어진다. 해안과 함께하기 위해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일반에 많이 알려진 정동진 남쪽 고개를 지나친뒤 꼬불꼬불한 내리막길을 10분가량 달리면 금진 해변을 만난다.

이곳 바위들이 심상치 않다. 바위들 옆면에 나타난 지층의 모양새로 보아 바위들은 일제히 육지를 향해 얼굴을 보이며 45도쯤 기울어진 상태로 서 있었다. 육지의 절벽의 지층 역시 해안 바위와 동일한 각도를 유지한다. 바다위의 암석이 육지를 연모하거나, 육지를 향해 집단시위하는 듯한 이 묘한 상황을 지질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하다. 금진은 바다낚시 마니아의 아지트이다.

제대로 시설을 갖춘 해수욕장도 아니고, 항구도 아닌 동해시 천곡동 한섬 해변은 외롭다. 찾는 이는 두 부류이다. 조용한 겨울바다의 낭만을 즐기기위해 전망 좋은 한섬 카페를 찾는 여인들이나 한적한 곳에서 편안히 낚시를 하려는 사람들. 아는 이가 많지 않아 감미로운 고독을 맛보려는 소수가 이곳에서 감성을 한바탕 뒤집고 간다.

한섬에서 10km 남쪽으로 가면 추암해수욕장을 만난다. 때마침 날짜 끝자리가 3일 혹은 8일 이라면 전국 최대 5일장 북평장날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추암에서 강마루에게 절망을 느낀 서은기는 중앙선침범 역주행을 감행하면서 자신의 치명적 고통을 지운다. ‘착한남자’ 드라마에 따르면 새로운 희망의 서막이다. ‘겨울연가’ 촬영지로도 유명한 추암은 최근 소금강 뒤편 조각공원길을 신설했다. 촛대바위를 감싸고 있는 용뫼 언덕의 뒤편을 담을 앵글이 새로 개발된 것이다. 추암 조각공원에서 바라본 용뫼는 과연 용의 머리를 그대로 닮았다.

동해시 최남단 추암과 삼척시 최북단 증산은 붙어 있다. 과거에는 떨어져 있었는데, 육지가 점점 솟아오르는 융기해안이라 이어졌다는 것이다. 추암-증산 어디엔가 해가사가 있었다. 거북아 네 머리를 내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삶아 먹으리라고 했던 ‘구지가(龜旨歌)’, 즉 창해가사의 유래가 되는 지점이다. 신라 경덕왕때 김순정이 하서주(지금의 강원 영동 및 경북 북부지역) 도독으로 부임할 때 그의 부인 수로 때문에 벌어진 몇가지 해프닝에 얽힌 스토리이다. 해신이 수로부인을 납치하자 주민들이 창해가사를 합창하며 집단시위를 벌여 수로를 되찾았다는 것. 많은 사람들의 입은 금까지 녹인다는 중구삭금(衆口金)의 대표적인 예라고 국문학자 최운식은 말한 바 있다. 수로부인 스토리 쟁탈전은 삼척시가 이긴다. 더 큰 해변인 추암은 작은 해변 증산에 미녀를 넘겨준 것이다.

지자체간 스토리 쟁탈전은 또 있다. 헌화가의 배경이다. 삼척시가 이번에도 강릉시를 눌렀다. 강릉시는 김순정이 강릉태수 부임중이라는 이유로 뒤늦게 헌화로를 만들었지만 삼척시는 당시 강릉이라는 지명이 없었고, 서라벌에서 북상하면서 영동지방 총괄책임자로 부임중이었으므로 삼척을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으며, 배경 지명이 확정된 구지가의 시점보다 한나절 빠르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워 강릉보다 일찌감치 임원지역에 헌화로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수로부인헌화공원까지 조성했다.

한적한 곳에서 편안히 겨울바다를 즐기고 인심좋은 어부가 제공하는 맛있는 회를 먹고싶다면 삼척 장호, 궁촌, 용화, 갈남 해변이 좋다. 아시안하이웨이 동해고속국도를 이용하기 보다는 삼척시내 남쪽끝지점인 오분교차로에서 왼쪽 옛도로를 타야한다. 옛도로를 가다보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절벽 꼭대기 휴게터에서 맹방 등 해변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갈남의 등대와 바위섬은 겨울에 더욱 빛나는 낭만과 감성의 이미지들이다.

베트남 퐁냐케방보다 1억3000년 빨리 만들어진 천연기념물 삼척 대금굴, 관동팔경 중 가장 규모가 큰 삼척 죽서루, ‘상속자들’에서 김탄과 최영도가 원정 사랑싸움을 벌인 동해 발한 논돌담길, ‘공주의 남자’, ‘식객’, ‘황진이’ 촬영지인 강릉 선교장, 설악산 공룡능선이 한 눈에 보이는 속초 권금성, 양양 오색로로 갈수 있는 백담사, 고성 화진포의 이승만-김일성 별장 등은 낭만가도 해변에서 가까운 문화의 상징들이다.

해변 운치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숙소로는 양양 대명 솔비치, 강릉 정동진 썬크루즈, 동해 망상오토캠핑리조트, 삼척 팰리스호텔 등이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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