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타이 손 내한 중 마스터클래스
피아니스트 김송현 임주희 정지원 참여
작곡가 이해ㆍ음악 구조화ㆍ해석 강조
“연습은 양보다 질이 중요해…
근본적 문제 파악과 창조적 접근 필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장 앞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 바로 옆에서 연주를 듣는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많은 배움이 됐어요.” (피아니스트 김송현, 정지원)
3년 만에 내한해 한국 관객과 만나고 있는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차세대 피아니스트 김송현(20), 임주희(22), 정지원(21)을 만났다. 지속가능한 음악 생태계를 위해 미래 세대 연주자 양성에 헌신하고 있는 당 타이 손은 바쁜 일정 중에도 한국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동양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당 타이 손은 ‘가장 쇼팽다운 연주자’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많은 제자들이 쇼팽 콩쿠르를 휩쓸고 있다. 20여년 몬트리올 음대에 재직하며 쇼팽 콩쿠르에서 각각 3, 4, 5위를 차지한 케이트 리우, 에릭 루, 이케 토니를 가르쳤다. 2021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브루스 리우의 스승이며, 현재 미국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부턴 쇼팽 국제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마스터클래스에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다양한 나이대의 학생들, 열혈 학부모,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까지 참석했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에 세 명의 젊은 피아니스트는 “‘거장’ 선생님께 배우고 싶은 곡”을 들고 왔다. 임주희는 쇼팽의 ‘발라드 2번’, 김송현과 정지원은 곧 앞둔 공연에서 연주할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디어 라흐마니노프’·8월 28일, JCC아트센터), 슈만의 ‘환상 소곡집’(‘코리안 영 아티스트 시리즈 II, 정지원 피아노 리사이틀’, 8월 22일·명동성당)을 각각 연주했다.
마스터 클래스는 세 명의 연주자가 한 명씩 나와 각자의 곡을 연주한 뒤 당 타이 손이 연주기법과 음악해석, 연주 방향성에 대해 조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 타이손은 악보 한 장 한 장, 마디 하나하나를 짚으며 조언했고,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 연주자에게 각기 다른 조언이 나왔지만, 이날 당 타이 손이 강조한 큰 부분은 네 가지였다. 작곡가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연주곡에 대한 주제의식 파악, 해석의 방향성과 음악의 구조화의 중요성이다. 특히 곡의 주제의식과 해석에 따라 달라져야 할 감정의 표현, 테크닉, 음색, 템포의 조절 등과 같은 세세한 조언이 나왔다.
촉망받는 차세대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쇼팽의 발라드 2번’을 통해 감정에 솔직한 연주를 들려줬다. 감정이 터져나올 때마다 타건은 강력해졌고, 정열적인 제스처를 보이며 관객을 빨아들였다. 당타이손은 이 곡을 연주하는 데에 있어 ‘치밀한 계획’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 음악학도는 감성이 뛰어나 본능적인 연주를 하는 장점이 있지만, 의도된 계획을 가지고 음악을 구조화 하고, 넓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쇼팽의 발라드 2번’에선 컨트롤 된 감정을 끝까지 끌고 가 터뜨리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이 너무 빨리 나오면 도리어 청중에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송현이 라흐마니노프의 ‘쇼팽에 의한 변주곡’의 연주를 마치자 당 타이 손은 ‘원더풀’(Wonderful)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그는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러시아 음악은 노래의 호흡이 길고, 서스테인(한 음의 시간에 따른 레벨 변화에서 악기음이 일정하게 지속하는 기간)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작은 부분까지 컨트롤이 좋았다”고 말했다. 당 타이 손은 또 김송현과는 다른 해석 방식도 제안, “라흐마니노프의 다크 사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쇼팽의 장송행진곡의 의미를 생각하고, 이 곡이 전하려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쇼팽은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 아니고, 귀족인 우아한 풍모를 가지고 있다”며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반응을 할 때 ‘노블 매너’를 보여준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송현은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뒤 만난 자리에서 “이 곡을 라흐마니노프 식으로만 해석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곡의 주제의 쇼팽과 곡 자체의 본질에 대해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켜주셔서 흥미로웠다”며 “특히 아름다운 음색에 대해 찾고 연구하려고 하는데, 곡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고 짚어주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곡에선 오히려 정말 어두운 면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것이 아름다움이구나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정지원이 연주한 슈만의 ‘환상 소곡집’엔 다양한 드라마가 그려졌다. 당 타이 손은 정지원이 연주를 마치자 “디렉션이 좋고, 곡 안에 숨어있는 시적인 면, 여러 포인트를 잘 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 반대에 부딪힌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 그로 인한 좌절과 격정이 담겨 있는 슈만이 ‘환상 소곡집’의 배경을 들려주며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의 해석 방향을 짚어갔다. 특히 당 타이 손은 “조금 더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곡의 흐름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며 “트릴(꾸밈음) 등 테크닉에 필요한 모든 방법이 감정적인 부분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원은 마스터클래스 이후 “연주를 준비하다 보면 쳐야지 쳐야지 하다가 어느 순간 할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오는데, 이 곡은 그 순간까지 오는 준비 기간이 길었고, 생각으로만 많은 구상을 했던 곡이다”라며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제가 보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주셔서 상상력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주를 할 때 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유로워져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세 명의 연주자를 위한 시간을 마친 뒤 당타이손은 미래의 클래식계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위한 공통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연습을 할 때 양에 집중하지 말고, 퀄리티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5시간 동안 계속 안 되는 부분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3시간을 하더라고 창조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반복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분석하면 시간을 덜 써도 훨씬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마스터클래스는 차세대 연주자들은 물론 객석을 메운 관객들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 됐다. 신영체임버홀, 금호문화재단 비롯한 다양한 음악 재단과 기관에서 이러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는 것은 단 한 번의 짧은 수업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위한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당 타이 손의 마스터클래스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도 음악학도라면 귀감이 될 다양하고 상세한 조언이 나왔다. 이날 마스터클래스를 찾은 김재현 군(서울대 기악과, 22)은 “선생님께서 관객들도 공유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말씀을 해주셔서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됐다”며 “특히 시범을 보여주실 때 소리의 퀄리티, 멜로디와 베이스의 차이를 느껴 그런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당 타이 손이 재직 중인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다니고 있는 피아니스트 신창용도 이날 마스터클래스를 참관했다. 신창용은 “학교 선생님이라 오게 됐는데 마스터클래스는 물론 특히 마지막에 해주신 연습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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