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의 노래’ 이향하 음악감독 인터뷰

경기시나위ㆍ입과손스튜디오ㆍ김용호 협업

개인의 기억과 전통음악, 사진이 만난 무대

 

전통과 다른 음악 위해 색다른 시도

가사 재조합, 새로운 편곡, 코러스 활용

 

입과손스튜디오 작업과 닮은꼴

동시대 전통 달리 보며 재해석

해외 공연 봇물ㆍ프랑스 아티스트 협업

판소리 세계 무대 알리며 다양한 활동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다큐멘터리 소리극 ‘사계의 노래’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다큐멘터리 소리극 ‘사계의 노래’ [경기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시간의 파편’들이 노래가 됐다. 젊음에 취한 20대 초반의 어떤 날, 명절 고향집의 풍경, 어머니의 죽음, 첫사랑의 시련… 어느 시절, 누군가에게 남아있던 기억의 단상이 전통음악과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사계의 노래’(6월 11~12일, 경기아트센터)다.

“흔히 말하는 사계절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사건, 어떤 기억들을 계절이라고 명명했어요. 저마다의 기억을 전통민요, 전통 성악과 매치하고, 성악가들이 감정을 녹여 노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보여주는 무대예요.”

‘사계의 노래’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이향하 입과손스튜디오 대표는 최근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공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이 공연은 독특하다. ‘다큐멘터리 소리극’이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왔다. 음악과 사진, 개인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를 여섯 개의 계절로 선보인다. 이를 위해 이향하 음악감독과 각각의 계절을 맡은 성악가들은 3주간의 리서치 과정을 가졌다. “개인의 기억을 소환하고 정리하는 워크숍”이었다. 공연에 ‘사적인 계절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공연에선 노래와 사진이 결합했다는 점이 특별한 지점이에요. 노래와 사진의 공통점은 ‘순간의 포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순간이 노래로 남듯이 사진 역시 한 순간을 이미지로 담아둔 거잖아요. 그 안에서 접점을 찾고 싶었어요. 관객들에게도 이들의 계절이 한 장면처럼, 순간처럼 찍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다큐멘터리 소리극 ‘사계의 노래’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다큐멘터리 소리극 ‘사계의 노래’ [경기아트센터 제공]

음악적인 부분에선 새로운 시도들이 나온다. 전통음악의 고정된 이미지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였다. 전통음악계에 오래 머물며 몸으로 귀로 체득한 감정과 교육의 답습을 벗어났다. 그런 점에서 ‘사계의 노래’는 보다 주체적이다. 성악가들이 각자의 기억을 소환한 만큼 “기존 전통민요, 전통성악을 가져오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부르는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개인의 기억과 연결된 이 노래들이 전통으로가 아닌 노래가 가진 순기능으로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 실험을 해봤어요.”

신선한 시도가 이어졌다. “기존 전통민요나 전통 성악곡의 가사를 재조합하거나 현대적으로 바꿨고, 새로운 음악적 편곡을 더했다”. 다른 전통 성악곡과 겹쳐 부르는 실험도 나온다. 코러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을 통해 성악단 개인에게서 출발한 노래가 기악단의 음악, 사진작가의 사진, 미술가의 무대, 안무가의 안무까지 릴레이 형식으로 이어져요. 한 사람의 기억에서 출발한 노래를 어떻게 이미지화해 관객에게 전달되는지를 펼쳐놓는 작업이에요.”

‘사계의 노래’는 이향하 대표가 활동 중인 입과손스튜디오가 꾸준히 이어온 작업 방식, 방향성과도 맞닿아있다. 새로운 판소리, 젊은 판소리를 지향하며 이전과는 다른 음악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입과손스튜디오는 판소리를 공동창작하며 “전통을 새롭게 보는 작업”들을 이어왔다. 동시대의 시각으로 전통을 재해석한다.

“전통을 오래 학습한 사람으로서 전통이라는 말 안에 너무 많은 것이 포함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하는 이 장르조차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정돼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고민은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했다. 판소리를 ‘하나의 장르’로 세우고자 한 고심과 열망이 입과손스튜디오를 통해 구체화됐다. 이 감독은 “판소리에 대한 다양한 작업이 깊어지면서 조금 더 판소리적인 감각을 찾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다큐멘터리 소리극 ‘사계의 노래’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판소리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 사진작가 김용호가 만난 다큐멘터리 소리극 ‘사계의 노래’ [경기아트센터 제공]

“판소리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생겨났고, 판소리가 장르로 만들어지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소리꾼과 고수가 가진 정체성이라는 답으로 나아갔어요.”

“소리꾼과 고수 중심의 창작 판소리를 만드는 것”은 물론 “판소리를 만드는 법을 만들어가는 시도”가 입과손스튜디오의 성장 동력이었다.

판소리의 정체성을 살리면서도, 전통이 쌓아 올린 견고한 벽도 허무는 과정을 가졌다. 그는 “전통은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역시 100년이 채 안된 것도 많다”며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일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더 자유롭게 많은 것을 더하고 덜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입과손스튜디오 멤버들 사이에선 판소리가 전통을 넘어 “셰익스피어와 같은 고전”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쌓였다. “멈춰있는 공연 예술이 아닌” 소통하고 진화하는 예술로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두 개의 눈’, 완창판소리, 몽중인 시리즈는 이 작업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입과손스튜디오의 시도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는다. 최근엔 프랑스 재즈 아티스트 배씨방과 협업하며 공연과 음반을 선보였고, 전 세계에서 다양한 공연을 통해 우리 소리를 세계 무대에 알렸다. 오는 20일엔 벨기에에서 ‘레미제라블’을 판소리화한 ‘구구한 사람들’을 무대에 올리며, 10월엔 멕시코 세르반티노 축제 무대에 선다.

이 대표는 “이전에는 판소리가 한국에서 온 낯설고 신기한 장르로 비쳤다면 지금은 유럽 내에 판소리 씬이 생길 만큼 조금 더 진하고 깊이있게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놀랐다”고 말했다. 입과손스튜디오가 ‘우리 음악 세계화’의 선두에 선 창작단체라는 수사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 무대에서 판소리는 점차 저변이 확대되고 있어요. 한국의 전통예술이 아니라, 고유한 장르로 보는 시각도 커졌고요. 판소리를 세계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것에 방점을 찍고 창작활동을 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판소리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힘을 믿어요. 지금의 시도와 노력이 이어진다면 판소리는 장르 자체로 서게 될 거고, 그것 역시 우리 음악의 세계화의 한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