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장기화…더 커지는 불안감
군사·경제 압박으로 직접 ‘정복’ 나선 러
몰도바, 국방력 사실상 전무 최우선 타깃
NYT “트란스니스트리아, 제2의 돈바스”
조지아, 영토 5분의1 親러세력 벌써 장악
남오세티야 “러 편입 법적 절차 밟을 것”
리투아니아 ‘수왈키 회랑’ 침공 가능성 ↑
카자흐 ‘脫러 개혁’ 추진에 러 불만 커져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77주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러시아명 전승절) 기념 ‘불멸의 연대’ 행진에서 2차대전 참전용사 가족들이 고인의 사진을 들고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승리의 깃발’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타스]](https://wimg.heraldcorp.com/content/default/2022/05/17/20220517000502_0.jpg)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에서 열린 ‘국기의 날’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몰도바 국기를 펼쳐들고 있다. [로이터]](https://wimg.heraldcorp.com/content/default/2022/05/17/20220517000503_0.jpg)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위치한 ‘조지아의 어머니(Kartlis Deda)’상(像)의 모습. 조지아 건국 1500년을 기념해 알루미늄으로 만든 것으로 높이는 20m다. [Georgian Travel Guide]](https://wimg.heraldcorp.com/content/default/2022/05/17/20220517000504_0.jpg)
![지난 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 광 장에서 열린 77주년 제2차 세계대전 종 전기념일(러시아명0 전승절) 행사에 참 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타스]](https://wimg.heraldcorp.com/content/default/2022/05/17/20220517000505_0.jpg)
“푸틴, 유럽에서 소비에트연방(소련) 재건 꿈꾼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지난 1월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마수를 뻗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불과 한달 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에 나섰다. 군사·경제적 압박을 통해 친(親)러시아 정권을 유지시키는 ‘간섭’ 수준을 넘어 직접 ‘정복’에 나선 것이다. 21세기엔 상상할 수 없다던 일을 푸틴 대통령이 현실로 만든 순간이었다.
비록 ‘친러 주민 보호’와 ‘탈나치화’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함으로써 러시아 역사상에 영웅으로 남으려는 푸틴 대통령의 신념이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의 밑바탕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역사상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 스스로 불렀던 1991년 소련 붕괴 이전 세계로 되돌리고자 푸틴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의 침공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면서 다른 옛 소련 국가들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 ‘옛 소련 국가’란 정체성을 들이밀며 침공에 나설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 “몰도바, ‘제2의 돈바스 될 수도”=우크라이나에 이어 러시아의 최우선 타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꼽는 곳은 바로 몰도바다. 지난달 22일 러시아군 중부군관구 부사령관 루스탐 민나카예프 준장이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를 완전히 통제하고 몰도바 동부 친러 반군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진출하겠다고 언급한 이후 러시아 침공설에 힘이 붙었다.
마이아 산두 몰도바 대통령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1991년 독립 이후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중립국’ 지위 만으로는 100% 안보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란 게 산두 대통령의 자체 진단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트란스니스트리아 국가안보부 건물과 라디오 방송탑 등이 의문의 포탄 공격을 받기도 했다.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한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제2의 돈바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 개입 당시와 현재 몰도바 내부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인구 328만명, 1인당 국내총생산(GDP) 4791달러(약 603만원)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인 몰도바는 전투기나 헬리콥터, 탱크가 한 대도 없을 정도로 자체 국방력이 사실상 전무한 수준인데다, 전체 전력 생산량의 80%를 담당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러시아에 점령당할 경우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에서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점령하고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무혈입성 후 몰도바 정부에 항복을 요구할 것이란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분리주의 지역 러 편입 선포한 조지아도 ‘전전긍긍’=흑해 동부 연안 남캅카스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도 몰도바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는 독립을 선언, 사실상 국토의 5분의 1이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진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 간의 전쟁에서 5일 만에 조지아가 러시아군에 항복한 결과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30일 남오세티야는 느닷없이 러시아 편입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것을 돌이켜 본다면, 조지아에 대한 러시아군의 전면 침공 가능성 역시 언제든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지아 집권 여당 ‘조지아의 꿈’ 소속 지오르지 켈라슈빌리 의원은 “우리는 방금 폭발한 화산 옆에 살고 있으며, 용암이 반대편 산등성이로 흘러내리는 중”이라며 조지아의 처지를 한탄했다.
▶‘눈엣가시’ 발트 3국·脫러 박차 카자흐, 러와 긴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역시 몰도바·조지아에 비해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혹여나 현실화될 수 있는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발트 3국이 반(反)러 연대에 적극 가담하자 러시아가 “우리 안보에 대한 위해 행위”라며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발트해 지역에 대한 핵위협에 나서며 긴장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특히, 러시아의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육로로 연결하는 이른바 ‘수왈키 회랑’이 있는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보고 대비 중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할 남부 회랑 확보를 위해 공세를 퍼붓고 있는 만큼, 수왈키 회랑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갈등 역시 갈수록 첨예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1월 반정부 시위 당시엔 러시아군의 도움으로 정권 유지에 성공했던 카자흐스탄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 노골적으로 거리두기에 나서면서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에 보낼 군대를 지원해 달라는 러시아의 요청을 거부했고, 자국 내 반러집회도 허용했다.
특히, 토카예프 대통령이 구상 중인 ‘새 카자흐스탄’은 탈(脫)러시아·친서방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30년간 장기집권한 초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을 포함한 정치개혁안 등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두고 다음 달 5일엔 국민투표도 치른다.
지난 2018년부터 내각 회의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한 카자흐스탄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부터 영문 국호를 기존 ’Kazakhstan‘에서 ’Qazaqstan‘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러시아 키릴 문자 대신 서구의 로마 알파벳을 사용할 방침이다.
러시아는 이 같은 카자흐스탄의 행보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카자흐스탄을 “제2의 우크라이나”나 경멸적 표현인 “작은 나치”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에 카자흐스탄 국민들 사이에선 우크라이나처럼 러시아가 예고 없이 군사적 침공을 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