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令)이 서지 않았습니다. 내가 총장인데 내가 모르는 검찰수사가 너무 많더라고요.”
지난 2009년께로 기억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을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총장 퇴임 뒤 사석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보고도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총장이었는데도 그렇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지는 않으나 술이 몇 순배 돈 뒤 그가 토로하듯 내뱉었던 호소에 그의 눈도 젖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그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서거한 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총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정권교체기 검찰총장의 숙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라고도 했다.
오래전 일이 새삼 떠오른 이유는 지금의 상황이 10여년 전 상황과 겹쳐서다. ‘정권교체기의 검찰총장’에 닥칠 숙명 같은 일들 말이다. 당장 윤석열 당선인 측에선 당선된 지 불과 5일 뒤인 지난 15일 김오수 검찰총장을 향해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된다”며 사퇴를 압박했다. 김 총장은 정치권의 사퇴 압박에 대해 지난 16일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사퇴 거부 의사표명이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김 총장의 입지가 매우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검찰총장은 물러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그대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맞을까.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취지를 찾았다. 검찰총장에 임기제가 도입된 것은 지난 1988년이다. 당시 여소야대 국면이었던 13대 국회는 검찰총장 2년 임기제를 포함한 검찰청법을 통과하며 제안 이유를 ‘검찰에 대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강력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서술했다.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의 취지로 본다면 김 총장은 정권이 바뀌었더라도 총장직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 임기제 도입 취지는 물론 직전 검찰총장이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된 현재 상황에선 더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이후 22명의 검찰 수장 가운데 2년 임기를 꽉 채워 퇴임한 경우는 8명에 불과하다. 정권교체기엔 ‘총장 패싱’이 다반사였고, 이 때문에 비운의 검찰총장이 나오기도 했다. 때로는 검난(檢亂)이 문제가 됐고 때로는 정치권의 압박이 검찰총장의 임기를 제약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각 시기 검찰총장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옷을 벗었다.
정치권에서 김 총장을 ‘물러나라’고 종용하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임기제를 골자로 한 검찰청법 개정안에는 국민의힘의 뿌리인 보수정당이 배출한 대통령인 김영삼 당시 국회의원도 서명했다. 김 총장이 근무하는 대검 청사 앞에는 ‘자리를 지켜달라’는 화환도 놓였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2월 ‘김오수 검찰총장’에 대한 질문에 “(김 총장은) 같이 근무도 했고, 심성도 착하며 좋은 사람이다. 임기가 딱 있는 데다 일할 여건이 되면 잘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총장이 임기를 지키느냐에 정치권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김 총장의 임기는 내년 5월 말까지다.
ho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