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속으로

“노무현 NLL 포기 발언” 정치 쟁점화

검찰, 대통령 기록물 삭제여부 수사

1·2심 무죄…대법서 뒤집혀 파기 환송

백종천·조명균 징역1년 집유2년 선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을 폐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이 지난 9일 파기환송심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을 폐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이 지난 9일 파기환송심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1심 무죄→2심 무죄→대법원 파기환송→파기환송심 유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논란이 법정으로 간 것은 2013년 11월이었다. 정치적 공방이 결국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고, 선고결과는 극적으로 대법원에서 뒤집히며 9년만에 유죄로 사실상 결론났다. 정치권에서 빚어진 갈등이 자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형사절차를 통해 시비가 가려진 사건이기도 하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 측은 서울고법 형사8부(배형원 강상욱 배상원 부장판사)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법원 판단을 한 번 더 받아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사실상 유죄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다시 뒤집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 사건은 파기환송심에서 일단락됐다고 봐야 한다.

회의록 폐기 논란은 2012년 10월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말하면서 불거졌다. 이 발언 진위를 놓고 정치권 공방을 벌였고, 결국엔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하는 사태로 확산했다. 정치권 논란은 나중엔 대통령 기록물 삭제 문제로 옮았다.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감추기 위해 백 전 실장 등에게 회의록을 이관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실제 회의록 초본이 삭제됐따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검찰이 일일이 대통령 기록물을 열어보는 수사로 이어졌다. 당시 검찰에선 이 사건을 아무도 맡고 싶어하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한 정치적 사안을 수사할 경우 어느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한쪽은 승복하지 않을 것이고, 수사 검사에겐 ‘정치 검사’ 딱지가 붙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사건을 잘 아는 한 전직 부장검사는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수사하는 자체가 정치가 되어 버린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됐다. 사건을 맡았던 김광수 부장검사는 대검 연구관,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등을 지낸 ‘공안통’ 검사였다. 실제 회의록 초본이 삭제됐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수백만건의 기록물을 일일이 뒤져야 했다. 보안 문제 때문에 파일명과 실제 문서 내용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문서도 많았기 때문에 디지털 분야 기술지원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안이었다. 수사를 위해 대통령 기록물을 일일이 다 열어 내용을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다. 정치적,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항이 담긴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보안을 신경쓰는 상황에서 수사가 이뤄졌다.

결국 수사팀은 백 전 실장 등이 회의록 초본을 삭제했다고 보고 2013년 11월 불구속기소 했다. 과학고 출신의 한상형 검사가 삭제 파일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백 전 실장이 삭제한 회의록 초본을 ‘대통령 기록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회의록 초본을 노 전 대통령이 결재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결론에 불복해 항소했다. 노 전 대통령은 기록을 중시하는 대통령이었다. 메모지 한 장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재직 시절 ‘이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기록을 보존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건이 반전된 건 대법원 상고심 단계였다. 대법원은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는 노 전 대통령의 결재를 거쳐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됐고, 문서관리 카드에 수록된 정보들은 후속 업무처리 근거가 되는 등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냈다. 사실상 유죄 판단이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에 따라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장기간 재판이 이어지는 9년 동안 법정 공방을 벌였던 양측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희비가 엇갈렸다. 수사를 책임졌던 김광수 부장검사는 대전지검 형사2부장, 법무부 대변인, 부산지검 차장검사 등을 거쳤지만 검사장 승진 길목에서 고배를 마시고 2017년 변호사로 개업해 지금은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실 검사,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등을 지낸 한정화 전 부장검사도 2018년 옷을 벗고 법무법인 광장에서 일하고 있다. 반면 기소된 조명균 전 비서관은 통일부 장관에 발탁됐다. 이 사건 변호를 맡았던 이광철 변호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민정비서관을 지내며 청와대 핵심 인사로 꼽혔다.

좌영길 기자


jyg9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