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100일째

“부수 업무 늘고 전지작업 등 요구 여전”

갑질 요구받아도 거절 못하는 현실 그대로

“경비원은 ‘乙중의 乙’, 못한다고 말 못해”

전문가 “지자체, 공동주택 문제에 나서야”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최씨가 근무하던 경비실의 모습. 김희량 기자
2020년 5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최희석 씨가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최씨가 근무하던 경비실의 모습. 김희량 기자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아파트 경비 노동자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 행위 등을 금지한 일명 ‘경비원 갑질금지법(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된 지 28일로 100일이 됐다. 그러나 현장 경비원들은 전지(剪枝·가지치기) 작업 같은 명시되지 않은 부수 업무를 계속할 뿐더러, 명문화된 업무에 대한 입주민들의 요구는 더욱 커졌다며 “바뀐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에서 경비원으로 일한 A(69) 씨는 경비원들의 상당수가 여전히 전지·예초작업 등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나무 가지치기 등 작업은 자격증이 있는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하는데,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이 나오다 보니 경비원에게 맡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어 “고령인 경비원들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작업을 하다 다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못하겠다고 하면 그만두라고 할 까봐 말을 못 꺼내는 건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경비노동자 모임을 운영하는 은평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경비 외 부수적 업무에 대한 입주민들의 요구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에서는 경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예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명시해 놓은 건데, 입주민 중에선 그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겨 더욱 요구해 업무가 많아졌다고 느낀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소규모 아파트 등 일이 더 많아진 분들은 오히려 (법 시행 전보다)후퇴했다는 말씀도 하신다”고 설명했다.

2020년 5월 입주민의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 씨와 같은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정부는 ‘경비원 갑질금지법’을 내놨다. 이 법에 따르면 경비원이 경비 외 종사할 수 있는 업무는 ▷청소와 이에 준하는 미화 보조 ▷재활용 가능 자원의 분리배출 감시·정리 ▷안내문 게시와 우편수취함 투입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 위험발생 방지를 위한 주차 관리와 택배물품 보관 업무 정도다.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2020년 5월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에 시달리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 씨의 사망 이후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난 뒤, 유가족들이 추모를 표현한 입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는 모습. 김희량 기자
2020년 5월 입주민의 갑질과 폭행에 시달리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 씨의 사망 이후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난 뒤, 유가족들이 추모를 표현한 입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는 모습. 김희량 기자

하지만 경비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은 여전하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설령 이 법에서 허용하지 않은 업무를 시키더라도 사실상 ‘을(乙) 중의 을’에 해당하는 경비원들은 거절할 수 없다. 아파트에 직접 고용되지 않는 이상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선정한 용역업체 소속이다. 입주자대표의 전화 한 통으로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현실은 그대로다.

전문가는 근본 원인은 고용 불안정이라며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경비원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유인책을 더욱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지자체는 ‘공동주택’의 문제에 대해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며 “아파트가 자치 관리로 전환해 직접 경비원을 고용해 처우 개선에 힘쓰게 하거나 처우 개선에 나서는 곳엔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hop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