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대표소송 우려 커진 재계
소송비용 등으로 기금재정 압박
기업 평판 나빠지면 주주도 피해
헤지펀드 기업 위협수단 전락 우려
소송 제기 기준·주체 제한 나서야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위원회가 주주를 대신해 기업의 경영진의 법적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이후 경제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경제단체는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연금 재정을 악화시켜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자문기관에 불과한 수탁위가 주주대표소송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자격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오는 20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상장사협의회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민연금 대표 소송 추진,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고 국민연금 수탁위의 주주대표소송 강화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힐 예정이다. 경총과 상장협은 이 토론회에서 국민연금법상 수탁위에 의사결정권한이 없다는 점을 집중 부각할 방침이다. 의결권한이 없는 수탁위가 주주대표소송의 대상과 소송 여부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국민연금법상 주어진 권한을 넘어선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계는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주도한다면 연금 가입자인 국민에게 이중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가입자로서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연금 고갈시점이 2057년으로 앞당겨진 상황에서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돼 기금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연금이 기업과 대표소송 분쟁을 시작하려면 법무법인을 선임해 착수금을 지급해야 하고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관리비용이 점차 증가해 국민연금의 재무적 압박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소송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국민연금이 직접적인 재정적 이익은 없다. 대표소송의 대상은 기업의 임원이다. 법원이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줘 임원이 손해배상을 해도 그 금액은 국민연금이 아닌 기업의 일반회계자금으로 들어간다. 기업은 패소하더라도 임원책임보험을 해결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승소해도 이득을 볼 수 없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앞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으로 기업 주총안건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활발히 행사하고 있지만 전체 주주의 뜻과는 배치되는 등 기업가치 제고에 큰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만큼 기업 경영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까지 제기하는 것이 기업가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민연금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주총안이 실제로 부결된 비율은 평균 2.4%에 불과했다.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 시행이 본격화된 지난해에는 반대의결권 행사 건수가 10월까지 537건으로, 전년도 전체(535건)를 뛰어넘을 정도로 활성화됐다. 그러나 실제 부결률은 1.9%까지 떨어져 반대의결권 행사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주주의 입장에서 기업이 소송을 우려해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피해가 고스란히 소액 주주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이 일상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벌인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소송을 당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평판이 떨어지고 주가가 빠지니 주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도 손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일본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 등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일상적으로 주주대표소송을 벌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헤지펀드가 기업을 위협해 이득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주대표소송이 악용될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활발히 진행해 판례 등이 쌓이면 이를 기반으로 헤지펀드가 유사한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주주대표소송이 주로 발생하는 미국은 헤지펀드가 최종 승소를 목표로 하기보다 소송 중에 임원이나 기업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악용하는사례가 많다는 것이 경총의 설명이다. 따라서 경제계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준과 주체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대표소송을 하더라도 법원에서 이사의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로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고 해당 위법 사실이 유죄 판결로 최종 확정된 후 제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수탁위는 기금 운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문기구에 불과해 수익률과 무관하게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와 여론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리스크관리 조직을 보유한 기금운용본부가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호연·주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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