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다 보면 사람을 만나고, 꼭 기사에 필요하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하지만 들은 내용을 모두 기사로 쓰진 않는다. 상대방이 비보도를 전제로 털어놓은 이야기를 폭로하는 게 취재윤리에 어긋날뿐더러, 꼭 알려야 할 공익적 가치가 있는 내용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상당수의 언론계 종사자들이 그럴 것이다.
MBC가 1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통화 녹음파일을 보도했다. 한 유튜버가 보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채 대화내용을 녹음했고, MBC가 이 파일을 건네받아 방송했다. 사실 이 유튜버를 기자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응징취재’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MBC는 이 사안을 저널리즘으로 포장하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해보자. 그저 특정인의 통화 내역에 대한 호기심에서 유발된, 일종의 관음증적 수요에 부응한 것 아닌가. ‘플러스 알파’로 선거에 영향도 주고 싶었을 것이다. 1인 미디어와 기성언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취재 내용을 거르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다. 지상파 방송사가 ‘게이트 키핑’을 포기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MBC는 채널A 법조기자의 취재윤리 문제를 ‘검언유착’으로 혹독하게 몰아가던 언론사였다.
다만 국민의힘이 MBC 보도를 형사고발한 조치도 부적절한 것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2014년,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산케이의 가토 다쓰야는 그 시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로 불리던 정윤회 씨와 만나고 있었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검찰이 가토를 기소하면서 저급한 보도를 했던 일본의 우익 언론사 기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투사가 돼버렸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꼭 국민의힘의 문제만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 매우 거칠다. 지난 10일, 법원에선 대장동 사건 첫 재판이 열렸다. 김만배 씨의 변호인은 직접 이재명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며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고, 다수의 언론이 이 말을 그대로 보도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변호인이 직접 말한 ‘이재명’ 대신 ‘성남시’를 쓰라고 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제소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자신을 비방한 시민을 모욕죄로 고소하기도 했다가 2년 만에 취하하기도 했다. 권력기관이 표현의 자유 영역에 형사처벌을 동원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다.
이번 김건희 씨 보도를 보면, MBC는 지상파 언론사로서의 품격은 물론 직업윤리까지 외면했다. 시청률이 잘 나왔을지는 모르겠으나, 기자의 정보 수집과 보도 영역 사이 벽을 허물어버렸다는 점에서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 앞으로 누가 언론 취재에 진솔하게 응할까. 이번 사안에서 듣고 싶었던 말은 대통령 후보 배우자의 시시콜콜한 사담이 아니라 이런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지상파 언론사인데, 이런 내용을 보도 할 순 없습니다(MBC).’ ‘MBC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위해 반론을 펴되 형사 고발은 하지 않겠습니다(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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