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주주대표소송 문제 제기
수탁위, 객관성·전문성 부족
여론재판으로 변질 가능성도
명확한 법적근거 정립도 필요
국민연금이 추진하려는 (주주)대표소송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과도한 기업 벌주기’가 기업 전반은 물론 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업에 대한 여론과 평판 악화는 국가적인 신인도 하락을 초래할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재계는 법적 근거 마련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탁위 ‘전문성 부족’, 결국 국민 경제에도 피해=재계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해 가입자인 국민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2057년 국민연금의 연금 고갈이 예상되는 가운데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되면 기금에도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승소해도 실익이 없고 재무적 부담만 크다는 설명이다. 또한 재계 일각에서는 대표소송 주체를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할 경우 오히려 객관성과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수탁위는 근로자 단체 3명, 사용자 단체 3명, 지역가입자단체 3명으로 각 단체가 추천한 9명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상근위원 3명, 비상근위원 6명으로, 비상근위원은 ‘유관분야 전문가’라는 추상적 규정만 담고 있어 전문성 담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소송 결과 기금이 패소할 경우 회사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장치도 없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지분을 투자한 대부분 기업이 대상이 돼 대기업, 중소·중견기업들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는다. 상장사에 대한 주주대표소송은 회사 전체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어도 가능하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는 300여개사에 이른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의 장기적 주주가치 증대 기여’를 목적으로 ‘이사 등이 기업에 부담하는 모든 책임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모든 기업인들의 경영활동 결정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업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 여론과 평판 악화로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대기업의 경우엔 글로벌 평판 하락은 물론 국가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론재판’ 우려될 대표소송…명확한 규정 마련해야=재계에서는 국민연금 내부 지침에 불과한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을 개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국민연금법에 대표소송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구체화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장기간 진행되는 대표소송의 성격상 소송 비용을 포함해 국민연금에 영향 미치는 유무형 손해가 매우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명확한 원칙의 정립 역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이사의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 ▷회사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 ▷이사 개인에게 경제적 이익 귀속 ▷해당 사실이 판결이나 당사자의 자백 등으로 확정된 경우 등이 모두 충족될 경우에만 대표소송을 할 필요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굴리는 연금의 성격상 확정되지 않은 범죄혐의만 가지고도 여론을 의식해 소송을 제기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K의 LG실트론 인수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5년이 걸렸는데, 만일 이를 근거로 수탁위가 대표소송을 하면 일반 주주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근본적으로 대표소송 제기 결정 주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현행과 같이 실제 기금운용을 담당하며 운용 수익률을 민감하게 주시하는 기금운용본부가 소송 실익 등을 검토하여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수탁위는 이해관계자의 추천으로 구성된다는 한계가 있고, 특히 기금운용을 통해 수익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를 대변해 나온 위원들이라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들의 소송 제기는 오히려 운용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 시행할 예정이라면, 남소방지를 위한 장치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수탁위에 맡기면 대표소송 패소시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소송 남발 소지가 크다”며 “소위 국민연금이 기업의 자율성을 옥죄는 ‘연금 사회주의’로 가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영규·김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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