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곡 전곡 작사·작곡·프로듀싱까지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보컬리스트 나윤선이 돌아온다. 지난 2년간 팬데믹이 야기한 비정상적인 일상과 생경하고 당황스러운 시간들을 오롯이 새로운 시도와 충실한 내적 성찰의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물이 오는 28일 전 세계에 발매하는 11번째 음반 ‘Waking World’다.

이 음반은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하고 음반 표지까지도 직접 촬영한 첫번째 음반이기도 하다. 수록된 11곡의 느낌과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코로나19 초반에는 저 역시 많이 안좋았다. 밖에서의 공연이 모두 단절돼 고립의 시간을 보냈으니. 한국에 집이 있지만 프랑스가 제2의 집인데, 갈 수가 없었다. 두렵기도 했었다.”

나윤선은 한국에는 락다운이 없었지만 스스로를 락다운시켰다. 2020년은 무기력한 시간으로 보냈다.

“지난해 이러면 안되겠다 싶었다. 혹시라도 기다려 주신 분들을 위해서도 아닌 것 같아 새로운 뭔가를 찾았고 기존 곡을 완성시키는 작업을 혼자 하게됐다. 지난해 7월 프랑스에 가게 됐는데, 또 언제 닫힐지 몰라 녹음을 했다. 재즈는 코드만 주면 뮤지션들이 즉흥연주로 개성을 담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어 한음한음 다 혼자 녹음했다. 그러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자작곡으로만 녹음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아티스트들은 궁핍하고 힘들 때도 예술이 나오는 법. 코로나로 인해 노라 존스는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을 냈고, 테일러 스위프트도 2020년 한 해동안 무려 2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방에만 있어서 그런가.

나윤선도 이번 음반 ‘Waking World’에서 꿈이 사라졌을 때 모두가 느끼게 되는 고통스러운 각성과 상처 그리고 치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타이틀곡 ‘Waking World’는 동틀 녘에 내린 이슬 같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암담한 지금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고 노래하다가도 수록곡 ‘It’s OK!’처럼 유려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로 우리를 위로한다.

특히 삶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불러오는 ‘Don’t Get Me Wrong’과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Lost Vegas’, 이 두 곡을 들어보면 속에서 뭔가 크게 꿈틀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게 어떤 것일까?

“‘Don’t Get Me Wrong’은 2008년 구상한 가장 오래된 노래다. 2019년에 조금 더 다듬고, 이번에 가사를 붙여 완성시켰다. 코로나를 겪으면 세상이 화합하고, 돈이나 파워가 아닌, 정신이나 우리를 둘러싼 가치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나. 한 배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바뀌지 않는 현실이 속상했다.”

‘Lost Vegas’를 쓰게된 이유도 흥미롭다. “지난해 1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라스베이거스를 가게됐다. 무서워 호텔에서만 지내다가, 미팅후 길을 걷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고 술 취한 사람 몇 사람만 보였다.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라스베이거스가 아니었다. 이게 지구의 미래인가? 너무 황량했다. 내가 좀비 같았다.”

나윤선 재즈는 클래식에 바탕한 유럽재즈 스타일이라 고급스러우면서도 어렵다는 말도 한다. 그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유럽에서 재즈가 성공한 이유가 수용성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있었는데, 유럽은 천국이다. 재즈는 즉흥연주가 가능해 로컬 뮤지션과 연주하고 교류하면서 음악 수준이 높아진다. 동양에서 재즈가 발달한 일본도 많은 미국의 흑인재즈 뮤지션들이 다녀갔다. 일본도 이를 받아들였다. 재즈 희귀음반중에는 일본판이 많다. 한국은 출발선이 다르다. 재즈는 역사와 문화와 관련이 있다. 재즈는 순간적 음악이며, 라이브 음악만이 그것을 느낄수 있다. 음반을 듣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저의 프랑스 친구들은 과거 전설적인 뮤지션을 본 기억들을 말한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도 올해 18회를 맞는데, 1~2회때 오신 분들 중에는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기억이 중요하다.”

프랑스에서 재즈를 공부한 나윤선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무척 다양하다. 하지만 자신의 음악이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재즈가 뭔지도 모르고 유럽에서 공부했다. 부모님을 통해 클래식과 뮤지컬을 익혔다. 라디오에서 한국 가요를 듣고 자랐다. 나이가 들어 재즈를 공부하니 원류를 따라가지 않게 됐다. 1930년대 미국 스윙이 학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즈를 공부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대로 다했다. 다행히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는 다 받아줬다. 재즈와 샹송을 부를때 제 감성은 100% 한국적이다. 한국의 포크, 국악의 감성이 있다. 그것을 프랑스에서는 자기들과 다르다면서 잘봐줬다.”

나윤선은 유럽에서 더 난리다. 유럽재즈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독일에서 최고음반 판매량으로 골든디스크를 2회나 수상한 바 있다. ‘유럽한류’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법무부 장관도 티켓을 구입해 그의 공연을 보러온다. 그에게 프랑스 도시 어디어디를 가봤냐고 물어봤더니 “테제베(TGV)를 타고 다녔다. 도시가 나와 있는 책자의 역을 거의 다 가봤더라”고 말했다.

“나는 관객을 만나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바로 나가 친구를 만난 것처럼 관객들과 소통한다. 나는 공연이 어떠했는지를 물어보고, 그 분들은 ‘이런 게 좋았어’, ‘이런 건 별로 였어’라고 말해준다. 나를 보러오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 분들때문에 용기가 난다.”

나윤선은 상업성을 노리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노래해도 실적까지 올리는 몇 안되는 아티스트다. 그는 “실적은 잘 모르겠고, 운이 좋았다. 프랑스를 간 것도 운명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 뮤지션과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꿈이 없었다. 난 뭐가 될 거야가 없었다. 하지만 팬데믹 때문에 방향이 더 구체화됐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어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하고 창작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질문에 답할 때마다 겸손 한 스푼을 추가하는 나윤선은 2022년 1월 27일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몽펠리에를 시작으로 월드투어가 예정돼 있고, 12월에는 국내 전국투어로 국내 팬들을 찾아간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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