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진압능력이 없어 군함을 잃었다.”
지난해 7월 화재로 큰 피해를 본 미국 해군함 ‘본험리처드’ 관련보고서가 최근 공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본험리처드함은 화재 전부터 장기간 정비 작업을 했었고 화재 진압설비의 87%는 가동 불능 상태였다. 승조원은 화재 진압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고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를 발견하고도 10분이 지나서야 화재경보벨을 울리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또 화재 당시 투입된 민간 소방대원과의 협동작전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 건조된 군함은 4만t짜리 고철이 됐다. ‘큰 비용이 들지도 않는 안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있었다면 충분히 작은 피해로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본험리처드함 화재는 단일 사고로는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고 함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대도시의 주요 시설이었다면 그 피해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현재의 대도시는 첨단 정보통신기술, 지하로 뻗어 있는 도시철도망과 에너지공급시설 등에 크나큰 의존을 하고 있는데 이런 시설들의 특징은 전문적인 기술과 연계돼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취약성이 크다.
‘위험사회’의 저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을 비롯한 여러 학자가 이런 문제를 일찌감치 내다보며 제도적 해법들을 제시해왔다. 우리 사회도 그동안 안전을 중시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많은 제도적 개선을 이뤄왔다. 그런데도 재난 관련업무에 종사하며 느끼는 안타까운 점은 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심은 애초 한결같이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적어도 시기에 따라 혹은 자신이 있는 장소에 따라 필요한 안전을 의식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기후적인 요인인 한파·폭설 등으로 각종 사고가 발생한다. 특히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를 크게 우려하곤 한다. 화재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최근 5년 기준 전국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자의 35.9%가 겨울철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의 소방관서는 겨울철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화재 피해예방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11월을 ‘불조심 강조의 달’로 지정해 화재예방 캠페인을 전개하고 겨울철 소방안전대책을 수립해 화재취약시설 소방특별조사, 현장훈련 등을 실시하며 본격적인 대비태세에 돌입한다.
특히 서울소방재난본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안전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주택용 소방시설과 타이머형 가스차단장치 설치를 지원하고 메타버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화재예방 홍보도 전개하는 등 인명 피해 예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증가하고 있는 무인 점포, 전기자동차 충전시설 등의 화재안전 강화를 위한 대책도 마련해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고 있다.
곧 큰 눈이 온다는 ‘대설’이기도 하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참에 가정 내 어디에 소화기가 있는지, 화재 경보기는 설치돼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
최태영 서울소방재난본부장
jycaf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