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년차...개관 이래 최대변화 직면

내년 8월 재건축 돌입 ‘원각사’ 복원

공공극장으로서의 정체성 수립 심혈

균형감 있는 양질 콘텐츠로 국민곁에

예술단 방향성 ‘소춘대유희’서 구체화

전통연희의 현대화 작업 보여줄 계획

젊은 국악인 발굴 ‘청춘만발’ 활성화

상업예술 투자 국부 창출기회 지원도

김희철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취임과 함께 전통상설공연을 폐지하고 예술단을 창설하는가 하면 시즌제의 도입으로 다양한 공연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공공사업을 지속하는 등 다양한 정책의 변화로 정동극장의 새로운 오늘을 이끌고 있다. 이상섭 기자
김희철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취임과 함께 전통상설공연을 폐지하고 예술단을 창설하는가 하면 시즌제의 도입으로 다양한 공연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공공사업을 지속하는 등 다양한 정책의 변화로 정동극장의 새로운 오늘을 이끌고 있다. 이상섭 기자

오래된 돌담을 따라 붉게 수놓은 정동길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속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정동교회)과 한국 공연사의 명맥을 이어온 정동극장이 자리하는 곳. 묵묵히 이어온 ‘시간의 길이’가 변치 않는 정동길 곳곳에 내려앉는다. 김희철(59) 정동극장 대표는 “가을날의 정동은 계절의 정취와 낭만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올해가 지나면 당분간 가을의 정동극장을 만날 수 없으니 더 많이 담아두세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를 복원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담아 개관한 정동극장은 내년 8월 재건축에 돌입한다. 객석의 규모는 3배 이상 늘어나며 극장의 ‘공공적 역할’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됐다. 2020년 개관 25주년을 맞아 추진한 재건축은 김 대표가 취임과 함께 세운 정동극장의 세 가지 목표 중 하나였다. ▷ 정체성의 변화 ▷재건축 ▷국립극장으로의 명칭 변경이 그것이다.

“2019년 8월 정동극장에 온 후 정동극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목표가 수립됐어요. 무엇보다 ‘정체성의 변화’가 필요했고, ‘재건축’을 통해 공공극장으로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다른 공공극장에 비해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은 극장이었던 만큼 정동극장의 역할과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국립극장’의 명칭을 달아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김 대표의 취임 3년차에 접어든 현재 세 가지 목표는 이미 달성했거나, 진행 중이다. 지금의 정동극장은 지난 26년의 역사 안에서 가장 급진적 변화를 맞았다. 이전의 정동극장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는 취임 이후 정동극장 수장의 명칭을 대표로 변경했다. “극장장이라는 명칭으로는 사업 방향을 진취적으로 확대하는 데에 제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꿈’을 향해 도약하는 첫 단추였던 셈이다.

일련의 변화와 결과로 인해 정동극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전통예술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공연계 안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로 비쳤던 정동극장은 100% ‘자체기획 극장’으로 거듭났다. 특히 팬데믹 시대의 위기는 발 빠른 변화로 ‘기회’가 됐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던 전통상설공연을 폐지하고 시즌제를 도입한 2020년부터 정동극장은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공공극장으로 주목받았다. 뮤지컬, 오페라, 연극, 발레, 클래식, 대중음악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선보인 콘텐츠들은 작품성, 공공성, 대중성 측면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대관공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정체성을 가지기 어려운 타 공공극장과 달리 정동극장만의 색을 내기 시작했다.

재건축을 앞두고 마지막 가을을 보내고 있는 정동극장에서 만난 김 대표에게 지난 2년간의 변화와 국립정동극장의 과제, 공공극장의 역할과 코로나19 시대 문화예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취임 이후 팬데믹과 맞물린 상황에서도 정동극장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새롭게 가져가고 싶은 정동극장의 정체성은 무엇이었나요.

▶국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연장, ‘시대의 변화’,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극장으로 적응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극장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바꾸기 위해 정책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첫 번째가 전통상설공연의 폐지였다.

정동극장은 지난 20년 동안 이른바 ‘공연관광’이라고 부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통상설공연을 운영했다.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의 공연예술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시작 당시 ‘공연관광’ 분야는 전무했으나 이후 ‘난타’, ‘점프’ 등 콘텐츠가 등장하고, 민간 제작사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선보이는 공연관광만 해도 20개에 달한다. 시장의 범위에 비해 공급이 과잉된 상태였고,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더이상 정동극장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설공연은 의미가 없겠다고 판단해 이 분야를 민간 영역으로 넘겨주고, 공공극장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3월 국립정동극장으로 기관명이 변경됐다. 국립정동극장으로의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국립극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극장이라면 국가적 사명을 가지고 국가의 문화를 주도하고, 국민들의 문화적 정서와 희망을 채우는 것은 물론 공연 생태계를 활성화해 건강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터전과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명감이 커졌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국립정동극장 직원들 역시 현재의 브랜드 포지션으로 인해 자긍심이 높아졌다. 직원들 스스로 국립기관의 종사자로서 해야할 역할,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내적인 변화도 생겼다.

정동극장은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측면과 전통예술의 보존과 발달이라는 두 가지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후자에만 치우쳤다면, 이제는 국립공연장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균형감 있는 다양한 작품들로 국민들과 결을 함께 해야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도입한 예술단 제도를 통해 ‘전통의 현대화’를 이끌면서도,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공연을 담은 시즌제를 선보이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강화한 점은 정동극장의 차별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책의 변화를 위해 취임 후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하며 우리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모두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이러한 길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통상설공연의 종료 이후 도입된 예술단 제도다. 그동안 전통상설공연에서 출연 계약을 맺은 예술인들도 정규직에 대한 니즈가 있었고, 이들을 정식 단원으로 한 예술단을 창단해 정기공연 체제를 가져왔다. 지난 3월 창단공연( ‘시나위 몽’)은 예술단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었다면, 다음 달 올릴 ‘소춘대유희’는 예술단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품이 되리라 본다. 국립단체로서 예술단은 전통연희를 대표하는 예술단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두고 있다. 예술단을 통해 전통연희의 현대화 작업을 보여줄 계획이다. 전통 역시 당대엔 가장 현대적인 작품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에 지금의 시대에 맞는 그림을 더하는 과정을 ‘전통의 현대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것이 정동극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다.

-공공극장으로서의 국립정동극장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지속가능한 공연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립정동극장은 ‘2차 제작극장’으로서, 공연 생태계 구축을 위해 한몫을 해나가고 있다.

정동극장은 자체기획 공연, 창작 공연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창작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 라이선스 작품이 공연 산업을 주도한 시절도 있었으나, 창작의 범위가 확장하고 그것의 필요성이 커지며 많은 지원책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결과가 많지 않다. 창작 개발 지원을 ‘1차 제작자’인 창작자에게 집중하다 보니 그것을 무대로 이어가는 체계화된 단계가 미흡하다. 정동극장이 가능성 있는 1차 제작 콘텐츠를 발굴해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결실을 만드는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다. 민간 제작사가 창작 작품을 제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성공 가능성이 적어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동극장이 공공 역할을 하며, 새롭고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나가겠다.

-공연 생태계 구축을 위해 인큐베이팅 시스템과 같은 공공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정동극장은 공공사업인 ‘청춘만발’을 통해 젊은 국악인을 발굴하고 지원하고 있다. 5년째 이어오고 있는 ‘청춘만발’은 앞으로의 정동극장이 꾸준히 지켜야 할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 분야는 사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공연은 기획자, 배우, 크리에이터, 스태프, 관객 등 하나부터 백까지 사람과 연결하는 분야다. 이 분야에선 인재를 어떻게 키우고, 인재들이 어떤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느냐가 중요하다. 국가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국립극장이 기초적 토대와 성장 배경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한다.

-공공사업을 강화하면서도 뮤지컬, 콘서트 등 상업예술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투트랙 전략을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연 예술도 돈을 벌 수 있는 분야와 써야하는 분야, 즉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와 지원과 투자를 해야하는 분야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적 재원이 지원돼 보존하고 발전해야 하는 기초예술 분야가 있다면, 이를 근간으로 상업적으로 이동하는 부분은 국부를 만들 수 있는 분야로 항시적 지원이 필요하다. 정동극장에선 벌어야 할 사업과 써야 할 사업이 50대 50으로 혼재해있다. 국비를 받아 운영하지만, 이는 늘 모자라기에 공공극장으로의 역할을 하기 위한 정책을 세웠고, 이를 통해 성과가 나오도록 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