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365일 숨은 영웅들(김중열 지음, 북코리아)=거창 우척현과 고령군 낙동강 변의 개산포(개경포), 무계 나루터는 임진왜란의 승전지이지만 퇴색한 작은 표지석만 남아있다. 경상우도 의병도대장 김면과 의병들이 처절하게 싸웠던 전투지이지만 그 어떤 승전의 흔적은 없다. 저자는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막바지의 전쟁터 한가운데로 독자를 데려가며, 침략을 막아낸 그들의 창의정신과 선비정신에 주목한다. 의병도대장과 병마절도사로서 5000여명의 의병과 1만5000여 명의 관군을 지휘해야 하는 책무를 무겁게 여겨 피난지를 떠돌던 가족이 격전지 10여 리 밖에서 문전걸식해도 한 번도 찾지 않은 김면, 신분의 특혜를 내던지고 백성과 함께 죽음의 길에 들어선 의병장들은 선공후사(先公後私)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격이다.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꿈꾸었으며, 또 세상을 향해 외친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망각의 먼지가 쌓인 역사적 장면을 한 장씩 넘기면서 전란 속에 숨은 영웅들을 불러낸 건 현재를 성찰하자는 뜻이다. 저자는 현직기자의 눈으로 역사의 갈피에 묻힌 조각 사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몰랐던 임진왜란의 이면을 생생하게 복원,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영웅들과 민초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에 다가간다.
▶삼키기 연습(박지니 지음,글항아리)=“‘그것’은 병이지만, 내 생존 방식, 내 존재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을 버리고도 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생존본능을 거스르는 거식증에 대한 이해는 단편적이다. 당사자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20년동안 거식증을 겪어온 저자가 들려주는 얘기는 전혀 다른 세계로 다가온다. 거식증 환자의 30퍼센트는 부분적으로만 회복되고 20퍼센트는 고질적인 환자로 남는데,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중인 저자는 16년 만에 식사치료를 재개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증세가 나타난건 청소년기. 하루에 여섯 번씩 폭식·구토를 하고 일상이 무너지는 거식증은 서른여덟 살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섭식장애 전문 입원병동에 여러 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저자는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묘한 긴장, 10,20대의 어린 환자들의 날 선 마음과 병동의 분위기를 마치 초현실적인 그림처럼 그려낸다. 저자는 아이들이 자신은 정신과 환자가 아니라고 외치는 마음을 안다. 환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보다 무엇이 되었든 규정당하지 않으려는 마음, 함부로 해석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병동의 아이들에게 음식은 칼로리라는 숫자로 치환된다. 거식증이 과연 치료가능한 것인지 저자는 따지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며 이해하고, 상처입은 다른 치료자들과 좀더 나은 삶을 고민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글쓰기는 치료의 과정이기도 하다.
▶어부들(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은행나무)=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오비오마의 데뷔소설. 2015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황홀한 현대의 전설’이란 극찬을 받았다. 소설은 사소한 믿음에서 비롯된 균열이 어떻게 한 가족을 비극으로 몰고 가는지 그리스비극을 연상시키는 기법과 나이지리아 이보족 문화가 섞인 독특한 세계관으로 그려낸다. 촘촘하게 짜인 복선과 시적인 비유들은 몰입도를 높이며 비극의 정수를 선사한다. 이야기는 형제들의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지자 통제에서 자유로워진 형제들은 ‘저주받은 강’으로 불리는 오미일라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예언자 아불루로부터 맏형 이켄나가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란 예언을 듣게 된다. 틀린 적이 없는 아불루의 예언에 이켄나는 자신이 형제 중 하나의 손에 죽을 것으로 해석,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가출한다. 둘째는 형의 횡포에 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동생들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하는데, 그런 예감은 현실이 된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낳고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작가는 유대가 돈독했던 한 가족을 무엇이 급격히 변화시키고, 사랑을 증오로 바꿔놓았는지 주목한다. 증오의 감정이란 무엇이고 어디까지 몰고가는지 밀도높은 문장으로 직조해내며 사랑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이윤미 ·이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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