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 10년만에

동양인 최초의 에투알 ‘박수 갈채’

러시아 발레 테크닉 폄훼에 상심

기초부터 다시 배우다시피 노력

자신만의 정체성 찾기까지 방황

힘든 순간도 나를 의심치 않았죠

한국에서 성장한 토종 발레리나 박세은. 그는 “ 프랑스 춤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어떤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제공]
한국에서 성장한 토종 발레리나 박세은. 그는 “ 프랑스 춤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며 “어떤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제공]
‘에투알’승급 한달여 만에 귀국한 박세은은 다음 달까지 한국에 머물며 가족여행, 후배 발레리나들을 위한 특강 등으로 보낼 계획이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에투알’승급 한달여 만에 귀국한 박세은은 다음 달까지 한국에 머물며 가족여행, 후배 발레리나들을 위한 특강 등으로 보낼 계획이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다섯 명의 줄리엣 중 유일하게 에투알(Etoile·수석 무용수, ‘별’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1년 만에 다시 열린 공연(‘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박세은의 모든 몸짓에 이야기가 스몄다. 움직이지 않을 때조차 춤을 추는 듯 오롯이 감정이 전달됐다. 공연 후 커튼콜에서 박세은은 에투알로 호명됐다. 가느다란 두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그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발레리나 출신인 오렐리 뒤퐁(Aurélie Dupont) 파리오페라발레단 감독은 박세은에게 “너를 에투알로 만드는 데 1년 반을 기다렸다”며 “무릎을 꿇고 잠드는 약을 받아든 장면에서의 네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아름다움과 감정을 전달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고 박세은은 ‘그 날’을 돌아봤다.

“콧대 높고 자신들의 춤에 자부심이 강하다”는 ‘발레 종주국’ 프랑스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됐다. 2021년 6월 10일, 입단 10년 만의 일이었다.

최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난 박세은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신이 나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영국 로열발레단,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와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파리오페라발레단(BOP)에서 동양인이 에투알이 된 것은 박세은이 처음이다. 그는 “내게 에투알은 간절함과 인내였다”며 “10년 동안 조금씩 바뀌고 성장한 내 춤을 관객들이 좋아해줘 지금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등급은 5개로 나뉜다. 카드리유(Quadrille·군무)-코리페(Coryphees·군무의 리더)-쉬제(Sujet·군무와 주역을 오가는 솔리스트)-프리미에르 당쇠즈(Premiere danseuse·제1 무용수)-에투알 등이다. 2011년 연수생으로 입단한 박세은은 이듬해 정단원, 2013년 1월 코리페, 11월 쉬제로 오르며 빠르게 승급했다. 2016년 11월엔 프리미에르 당쇠즈 에 오르며 빛나는 재능을 인정 받았다.

‘10년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열 살에 발레를 시작한 그는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토종 발레리나’다. 발레는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 나라마다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한국은 러시아 스타일인 ‘바가노바 메소드’를 기본으로 한다. 파리로 떠난 박세은은 그간의 배움은 뒤로 한 채 프랑스의 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현재 발레단에 있는 총 10명의 에투알 중 8명은 파리오페라발레학교 출신이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저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였어요.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없고 기술만 뛰어나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프랑스 무용수를 제치고 큰 무용수가 될 거라고 했어요.” 그는 “프랑스 춤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피나는 노력, 노력 이면에 숨은 끝없는 고민과 방황은 고비마다 만나야 하는 난관이었다. “러시아 기법에서 프랑스의 춤 스타일로 방향을 틀어야 할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어떤 곳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던 기억이 나요.”

“엄격한 계급 사회”라는 발레단에서 박세은이 발레리나로서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고, 2분간 주어지는 승급시험에선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긴 부족했다. 그는 “한 사람의 춤을 평가하기엔 2분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춤의 강점은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점이에요. 어릴 때부터 해온 방식이라 그런지 전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파리에선 제가 기교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플러스로 가져가야 하는 요소인데, 그것으로 흠을 잡을 수 있는 곳이 프랑스더라고요.”

‘완벽한 기술’만이 박세은이 보여주고 싶은 춤의 전부가 아니었기에 갈증이 커졌다. 그는 “기술이 전부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춤을 추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기술적인 부분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기다림 못지 않게 발레리나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도 어려움이 많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이게 맞는 길인지 스스로 질문을 많이 던졌고, 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제1 무용수가 된 이후 에투알 승급까지 4년 6개월이 걸렸지만, “(에투알은) 언젠가 맡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자리가 주어지니 자신감도 붙었다. 프리미에르 당쇠즈(제1무용수)가 되고 난 이후였다. “그 때부터 더 이상 제 춤을 의심하지 않게 됐어요. 무용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데, 표현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표현하니 관객들이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지만, 박세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이력서 상으론 최고를 찍었고, 갈 곳까지 갔다고 보여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직 관객에게 보여줘야 할 춤이 너무나 많아요. 코로나19를 지나오며 ‘예술은 관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깊어졌어요. 춤은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춤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고, 프랑스 발레계에서 에투알 중에서도 가장 큰 에투알이 되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