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실험의 시초’ 바람곶 박순아 박우재 이아람

보수적인 전통음악 안에서의 끊임없는 도발

음악활동 DNA…무토, 음악그룹 나무로 이어져

“전통음악이 남긴 위대한 유산”이 창작욕구로…

선을 밟은 사람들의 새로운 시도…자기 세계 확장

 

전통음악이 변화를 향한 갈망이 들끓던 시기,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이 태어났다. 바람곶으로 만나 현재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무토 박우재, 음악그룹 나무 이아람, 박순아(왼쪽부터)는 “바람곶에서의 활동이 연주자로의 활동을 넘어 창작음악을 시작한 전환점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해묵 기자
전통음악이 변화를 향한 갈망이 들끓던 시기,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이 태어났다. 바람곶으로 만나 현재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무토 박우재, 음악그룹 나무 이아람, 박순아(왼쪽부터)는 “바람곶에서의 활동이 연주자로의 활동을 넘어 창작음악을 시작한 전환점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5년 전, 2006년이었다. “호기심은 많았는데 용기는 부족해서 내 것을 하지 못할 때였어요.”(무토 박우재) 그 시절의 전통음악은 변화를 향한 갈망이 깊었다. 학생, 프로 음악인 사이에서도 “창작음악을 향한 열망이 들끓고, 붐이 일던 시기”라고 박우재는 돌아본다. 그때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이 태어났다. 국악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세계를 보여준 바람곶은 ‘새로운 흐름’의 출발이었다.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로 이어진 음악 실험의 시초격. 예술감독 원일(피리, 타악)을 중심으로 박순아(가야금), 박우재(거문고), 박재록(시타르, 전자음향), 이아람(대금)으로 구성된 바람곶의 활동기간은 약 7년. 2012년 공식 활동을 마무리 한 이후 바람곶이 우리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이 적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음악 실험을 이어가는 ‘바람곶 3인방’ 박순아 박우재 이아람을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마주한 눈빛에서 ‘무언의 암호’가 오갔다. 오랜만의 만남에도 어제 본 사이처럼 끈끈하다. 보이지 않는 실이 이들을 촘촘히 연결했다. 공통의 가치를 가진 ‘비밀결사대원’처럼,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공유했다. 어쩌면 서로의 미래도 그려봤는지도 모른다. 거기엔 ‘바람곶’이 있었다.

바람곶 이후 세 사람의 음악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며 또 다른 미래를 그린다. 박해묵 기자 바람곶 이후 세 사람의 음악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며 또 다른 미래를 그린다. 박해묵 기자
바람곶 이후 세 사람의 음악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며 또 다른 미래를 그린다. 박해묵 기자 바람곶 이후 세 사람의 음악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다. 수많은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며 또 다른 미래를 그린다. 박해묵 기자

▶ 강력한 자기장을 벗어난 사람들…“바람곶은 전환점”=바람곶에서의 활동은 연주자로 살던 세 사람에게 ‘창작의 눈’을 뜨게 했다. “공동창작”을 통해 “악보에 있는 음악이 아닌 연주자가 스스로 만드는 음악”(박순아)을 선보이는 팀이 바람곶이었기 때문이다.

음악그룹 나무의 예술감독이자 블랙스트링 멤버로 활동 중인 이아람은 “바람곶은 내가 왜 음악을 만들며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 팀”이라고 말했다.

“연주자가 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견을 나눴어요. 제가 얻은 답은 창작은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라는 거예요. 바람곶 활동 전까진 이전에 있던 것을 답습하고 연주하는 연주자로 살았는데, 바람곶은 제 음악의 전환점이 됐어요.” (이아람)

박우재는 “바람곶을 통해 핵 융합이 가능한 소형 원자로를 탑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활동이 실제로 그렇다. 무토(MUTO)는 거문고와 프로듀서, 그래픽 아티스트가 만나 완전히 새로운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거문고를 뒤집어 술대가 아닌 활로 연주하는 음악은 감정의 진폭을 때론 섬세하게, 때론 극적으로 담아낸다. “전통음악을 하면서 나와 붙지 않는 부분을 고민할 때 바람곶을 만났어요. 그 안에서 전통을 도구로 다양하게 융합하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 얼마나 더 강력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됐어요.” (박우재)

10여년 전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전통음악 안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 한 때의 ‘일탈’로 받아들여지던 시기도 있었다. “‘잘 한다’고 응원을 하면서도 그만하고 돌아와야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박우재) “지금은 전체적으로 힙하고 가볍게 접근하지만 그 땐 분위기도 진지했어요.” (이아람)

일탈에 머물지 않은 것은, 새로움을 향한 갈망과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윗세대의 것을 계승하고, 전수하며, 주어진 것을 완수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울타리 안에서 음악인들은 끊임없이 도발을 꿈꿨다. 박우재는 “역사적인 이유였든, 교육의 결과이든, 본래의 오리지널리티이든 전통은 너무나 강력한 자기장을 가지고 있어 어디로 가든 회귀하게 되는 구조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걸 하고 싶어 창작을 한다 해도 아주 멀리 가지 않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돼요. 계속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그럼에도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박우재) 바람곶 이후 등장한 잠비나이, 씽씽, 무토, 음악그룹 나무, 추다혜, 이날치, 해파리 등이 그렇다. “점점 더 강력한 사람들이 나와 선을 그리고, 선을 밟고 있는 거죠.”(박우재)

바람곶의 DNA를 이어받아 ‘이름 없는 행성’을 탐사하는 음악인들이 존재하기에, 전통이 ‘뒤처진 것’이라는 생각은 진작에 깨졌다. 세 사람의 음악 세계 역시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박해묵 기자
바람곶의 DNA를 이어받아 ‘이름 없는 행성’을 탐사하는 음악인들이 존재하기에, 전통이 ‘뒤처진 것’이라는 생각은 진작에 깨졌다. 세 사람의 음악 세계 역시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박해묵 기자

▶ 두려움을 뛰어넘은 ‘보이저 1호’=선을 밟기까지 두려움도 있었다. 장르의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오래된 교육, 창작자로 걷는 길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바람곶 활동을 통해 세 사람의 음악 세계는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다양한 음악 활동으로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상(블랙스트링)을 받기도 했던 이아람은 스스로도 자신의 음악을 “장르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순 없어요. 강력한 자기장으로 돌아오고 다시 나갈 때 매번 같은 곳으로 돌아오면 재미가 없으니 늘 발버둥치며 다른 시도를 하고 있어요. 자기장으로 돌아오면 위대한 정신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제가 아무리 새로운 걸 만들어도 산조보다 좋은 걸 만들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늘 있어요. 그런 것을 보며 겸손해지고 내가 만든 것을 돌아보면 다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게 정말 큰 유산이에요.”(이아람)

재일교포 3세로 조총련 민족학교에서 가야금을 처음 공부한 박순아는 “가야금은 내가 말할 수 있는 언어를 대신한다”며 “그 언어를 보다 깊이 알고 싶어 가야금이 태어난 한국 땅에 와서 이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바람곶의 활동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형식보다는 악기 하나로 전달할 수 있고 소리가 가진 힘을 전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게 된 거죠.” (박순아) 지금의 음악활동은 그 바람을 이어간다. 바람곶 이후 자신만의 가야금 세계를 구축하며 소리의 진동만으로 공간과 감정, 기억을 전달한다. ‘찬:찬란하길 바라며’(14일 2021 ‘여우락 페스티벌’) 공연이 대표적이다.

바람곶의 DNA를 이어받아 ‘이름 없는 행성’을 탐사하는 음악인들이 존재하기에, 전통이 ‘뒤처진 것’이라는 생각은 진작에 깨졌다. ‘국뽕에 취한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떠돌고, 전통은 ‘힙한 것’이라는 인식도 생겼다. 박우재는 “새로우려면 끝없이 새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움이 존재한다기 보다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가짐, 정신을 투영하는 말이에요. 정말 새로운 것이 있는지 아닌지는 잡은 사람만이 알 수 있겠죠. 우주에 가본 보이저 1호만이 미지의 세계를 알고 있는 것처럼, 음악가들도 보이저 1호처럼 각자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해요.”(박우재)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무토 박우재, 나무 이아람, 박순아 (전 바람곶 멤버들) 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무토 박우재, 나무 이아람, 박순아 (전 바람곶 멤버들) 가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박해묵 기자

▶ 바람곶 그 후…꾸준한 시도와 실험= 바람곶 이후 세 사람의 음악 세계는 박우재가 음악감독이 돼 선보이고 있는 ‘2021 여우락 페스티벌’(7월 24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을 비롯한 우리 음악의 낯선 세계가 무대로 이어지는 중이다.

올해 주제는 “선을 밟은 사람들의 규칙 없는 초연결”. 박우재는 “‘선을 밟은 사람들’이라고 주제를 정한 것은 조금 더 도발적인 느낌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계를 넘고 선을 넘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미 넘어간 사람들은 자기 세계를 구축했거나 이미 정리가 된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기존의 것을 벗어나 선을 밟기까지는 기존의 규칙이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규칙으로 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지금 진행형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세 사람 역시 지금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규칙을 깨고, 자신만의 것을 만들었다. 이아람은 ‘여우락’ 최다 출연자다. 2011년 바람곶 무대를 시작으로 음악감독(2018년, 2020년)을 거쳤고, 오는 16~17일(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선보일 무대까지 10번이나 여우락을 찾았다. 박우재, 박순아는 올해가 여섯 번째 무대다. 이아람과 음악그룹 나무가 선보일 무대는 ‘2021 여우락’의 지나온 길을 정리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역대 ‘여우락’ 무대 중 우리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람곶의 오마주 무대(물을 찾아서-리마스터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아람은 “존경의 의미를 담으면서도 기존의 음악을 최대한 해체해 새롭게 도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도와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자기 복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창작하는”(이아람) 다작 음악인이기를 자처하고, 때론 “생계를 위한 현실적 방법”(박순아)으로 창작을 곁에 두면서도 “가장 자기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박우재)으로, “음악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후배들을 위한 어른”(박순아)이길 희망한다.

“연주자로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하루하루 죽을 때까지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꾸준히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길 원해요.”(박순아)

“바람곶에서 박순아 선생님을 정신적 지주로 모신 건 존경받을 수 밖에 없는 ‘뼛속 깊이 연주자’였기 때문이에요. 제가 본 가장 완성형에 가까운 연주자예요. 저 역시 완성형 연주자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그걸 이뤄가는 길에 창작이 있어요. ‘구도의 길’을 걷는 연주자의 길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업이 있으면 좋겠어요.”(이아람)

“저다운 음악을 해나가도 싶어요. 미니멀한 음악, 아카데믹한 현대음악, 디자인된 음악이 아닌 조금 더 감정적인 음악이요. 과도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것을 숨기지 않는 음악,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모습 중 감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박우재)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