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2022년도 국가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안이 심의·확정됐다. 올해 대비 4.6%(1조 405억원) 증액된 23조5082억원이 정부 각 부처에서 추진하는 1182개 사업에 투입된다.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나라살림 여건에도 꾸준히 증가하는 국가 R&D 예산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과학기술의 역할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여전히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인들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인식돼온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과 디지털 전환,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간 기술패권전쟁 등 일련의 국내외 환경 변화를 겪으면서 과학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시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반도체, 배터리, 5G 등 첨단 분야의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신종 전염병과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문제에 대한 해결사 역할까지 떠맡게 된 형국이다. 날마다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소재·부품·장비 고도화, 한국판 뉴딜, 2050 탄소중립 등 굵직한 국가 차원의 과제는 물론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분야는 없다. 정부의 과학기술투자 확대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내년도 국가 주요 R&D 예산안은 이러한 과학기술의 다양한 역할을 반영하고자 ‘위기대응 및 경제회복, 과학기술 선도국가 도약, 포용혁신으로 삶의 질 제고, 글로벌 기술패권경쟁 대응’의 네 가지 분야로 구성돼 있다.

위기대응 및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변종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가 돋보인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K-글로벌 백신 허브로서의 위상을 드높인다는 계획이다.

과학기술 선도국가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기초연구 투자 배증 목표를 달성한다. 우주, 양자컴퓨팅, 6G 등 미래 유망 분야의 핵심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전환, 수소 생산·저장·활용기술 개발, 에너지 고효율화, 탄소 선순환생태계 구축에도 투자한다.

포용적 혁신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지역의 주력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 혁신역량을 강화하고, 탄소중립, 소·부·장 등 주요 정책 분야의 유망 중소·벤처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주·양자컴퓨팅 분야 기술선도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6G기술 선점과 해외 탄소저장소 확보를 위한 국제 공조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국가 R&D예산안은 국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기에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초당적인 협력을 기대해본다. 당연히 과학기술계는 우수한 성과로 답해야 한다. 정부의 R&D투자 확대 노력에 더해 꼼꼼히 살펴야 할 것들이 있다. 공공연구소, 대학, 기업 등 혁신 주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효율적인 역할 분담과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얻어야 한다. 눈앞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함께 긴 호흡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과학기술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수한 R&D 성과는 결국 일선에서 땀흘리는 연구자의 양어깨에 달려 있기에, R&D의 주역인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신명 나고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